
매년 11월 초 핀란드 국세청은 납세 정보를 공개한다. 정치인, 연예인, 스포츠 스타 같은 유명 인사는 물론 평소 궁금했던 동료의 연봉이나 얼마 전 차를 바꾼 이웃의 소득까지 알 수 있다. 물론 남이 나의 소득을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노동소득인지, 자본소득인지도 나온다. 국세청이 공개한 고소득자 명단을 보며 느끼는 감정 탓일까, 핀란드 사람들은 이날을 ‘질투의 날’이라고 부른다. 이웃 나라 노르웨이, 스웨덴에도 같은 제도가 있다. 북유럽에서 부자는 세금뿐 아니라 벌금도 많이 낸다.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의 국가는 교통법규를 위반할 경우 운전자의 소득을 기준으로 벌금을 매긴다. 일수벌금제라고 하는데 위반자의 일수, 즉 하루 평균 소득 절반을 기준으로 위반 내용에 따라 매겨진 범칙금을 곱해서 계산한..

10월 국정감사 중에 민주당 서동용 의원실은 미성년 논문 공저자가 진학한 대학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최소 30곳에 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서동용 의원실이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의 결정문을 분석한 결과, 미성년 공저자 논문 전체 64건 중 22건이 연구부정 판정을 받았다. 22건의 미성년 공저자는 교수 자녀 4건, 동료교수 자녀 5건이며, 그중 의과대학 소속 교수 논문이 9건으로 가장 많았다. 그런데 이런 부정행위를 저지른 교수들은 대부분 경고나 주의 같은 ‘솜방망이 징계’를 받는 데 그쳤다 한다. 그러니까 서울대를 위시한 ‘주요’ 대학에는 또 다른 정경심 교수들과 그들을 비호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왜 언론인들과 정치인들은 이 문제를 더 파헤치지 않는가). 적어도 교수·연구자라면 입시비..

종전선언을 두고 열정과 냉소 그리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며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유엔 총회에서 심중에 남아 있던 모든 열정을 담아 평화의 불씨를 지핀 이래 종전 논의가 되살아났다. 게다가 이번주에는 대통령이 교황 면담을 통해 종전선언을 위한 바티칸 순방 외교에 나선다고 하니, 향후 교황 방북 등 여러 가지 이벤트가 종전을 앞당기는 수레가 될 개연성이 높아졌다. 종전선언을 향한 이 같은 ‘열정’은 대북 특사 성 김의 방한으로도 더욱 불붙고 있다. 우리 고위 당국자가 워싱턴에서 종전선언 문안이 논의 중이라며 뭔가 될 것 같은 분위기를 내비친 이후인지라 그의 방한에 기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시국에 방한한 성 김이니 그의 입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게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

얼마 전 올해 첫 햅쌀로 밥을 지어 먹었다. 긴 가을장마와 이상고온으로 병충해 피해가 커서 특별히 더 소중한 밥이었다. 쌀을 갖고 오신 선생님이 “역시 밥맛이 좋아” 하시더니 문득 인제쌀은 값이 높다는 말씀을 하셨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생산량이 낮아서일까, 생산비가 높아서일까? 돌아온 답은 뜻밖이었다. “여기 쌀이 좋거든.” 쌀 품질이 좋아 값을 좋게 받는다는 것이다. 강원 양구, 인제, 철원은 옛날부터 쌀이 좋기로 유명하다는 말을 덧붙일 때 표정에는 자부심도 묻어났다. 나는 또 중요한 것을 놓쳤다. 농민들이 쌀, 벼, 논에 대해 관계 맺는 방식과 땅을 대하는 마음을. 자연과의 협동이 없이는 근원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농사여서 농촌 지역은 기후위기로부터 ..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상속세 개편 방안에 대한 조세재정연구원의 연구용역 내용을 11월에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비롯한 재계에서 상속세율 인하를 주장해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재계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 명목세율이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고 최대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물려줄 때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해 일반 주식보다 가액을 20% 높게 평가함으로써, 경영권 승계를 어렵게 하고 기업 투자를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해묵은 재계의 상속세율 인하 주장이 최근에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유족이 약 12조원의 상속세를 신고했는데 최근에 유족이 상속세 마련을 위해 약 2조원의 주식을..

경향신문이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을 다루는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첫 기사의 제목은 ‘두 번째 분단’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현실을 가리킨다. 언제부턴가 우리가 쓰고 있던 ‘서울공화국’보다 훨씬 더 강력한 표현이다. 서울공화국은 “서울은 한국의 도시들 가운데 가장 큰 도시가 아니라 한국 그 자체이다”라고 한 그레고리 헨더슨의 설명과 맞닿아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서울공화국과 그 밖의 공화국이라는 두 개의 공화국, 그리고 두 개의 국민이 있다는 개념도 여기서 나왔다. ‘두 번째 분단’은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뜻을 담은 것 같다. 말하자면, 오늘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문제는 민족분단에 버금가는 모순이라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기사 한 줄 한 줄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이 한창이던 중학교 3학년 때다. 학생들 사이에서 유도파와 레슬링파로 나뉘어 응원전이 벌어졌다. 당시 학교에 레슬링 선수 몇 명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름 신경전이 대단했다. 결국 LA 올림픽에서 획득한 6개의 금메달 중 유도와 레슬링이 각각 2개씩을 우리나라에 안겼다. 올림픽이 끝났지만 중학교 남학생들의 혈기왕성한 승부욕은 쉬 사그라들지 않았다. 쉬는 시간만 되면 책상을 한 쪽으로 몰아놓고 뒤엉켜 교실 바닥을 뒹굴며 시키지도 않은 청소를 몸소 실천하곤 했다. 이때 나는 유도파의 소위 대장 격이었다. 하루는 유도의 신기술을 보여준다며 하필 음악을 전공하는 친구를 세워놓고 배대 뒤치기를 해보였다. 결국 그 친구의 쇄골이 부러지는 사고를 쳤다. 기억하기 싫은 흑역사 중 하..
BC(Before Corona) 2년경 그러니까 2018년 즈음, 서울 을지로 세운상가에 맛있는 커피집이 있다고 해서 들렀다. 호랑이 카페. 가게 앞은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무리와 커피잔을 들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유명하다는 호랑이 라테를 시켰다. 라테가 별다를 게 있을까 싶지만 에스프레소 샷은 고소하면서 진하고 우유는 달큼하고 부드러워 한 모금에도 유명한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어느 날 한산한 틈을 타 사장님에게 말을 붙였다. “여기는 원두도 좋고 우유도 보통 우유가 아닌 것 같은데 한 잔에 3500원, 정말 좋네요.” 그러자 무덤덤한 답변이 돌아왔다. “저희는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서 입주했기 때문에 좋은 재료를 쓰고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어요.” 바로 옆 구움양과집에 물었을 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