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를 막는다는 취지로 여당이 단독으로 입법을 추진하던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25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해 일단 제동이 걸렸다. 정부와 여당은 개정안을 밀어붙이지 말고, 보다 근본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대안으로 언론의 재정 독립성을 강화하고 가짜뉴스 생산을 언론 스스로가 억제할 유인을 제공하는 미디어 바우처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야당뿐만 아니라 언론계, 학계, 시민단체들도 가짜뉴스를 막기보다는 정당한 보도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2005년 삼성 X파일 보도와 같은 재벌 비리나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보도처럼 권력형 비리 사건은 보도 초기에 사실관계가 온전..
군대에서 사건·사고가 터지면 늘 비슷한 대응이 뒤따른다. 정권 차원에서 부담스러운 사건이 터지면 달라지는 건 대응 수위가 높아질 뿐이다. 2005년 6월19일, 28사단 휴전선 감시초소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터졌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당 차원에서 ‘병영문화 개선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위원회는 6월27일 출범했다. 8명이 죽고 4명이 다친 사건이었으니, 시급히 대책을 마련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와 별개로 7월에는 ‘병영문화 개선 대책위원회’를 민관군 합동으로 구성했다. 국방부 장관과 민간인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위원회 활동을 통해 군대에 대한 일상적인 감시와 피해자 구조대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고, 독일식 국방 옴부즈맨에서 그 답을 찾았다. 국방부 차관보를 독일에 파견해 실제 운영사례를 배워오..
연예인 부부가 방송에 나와 깻잎 때문에 싸운 사연을 이야기했다. 여자 후배와 함께 식사하던 중 후배가 깻잎을 먹는데 잘 안 떼어지자 남편이 젓가락으로 아래 깻잎을 잡아주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냥 매너일 뿐이라고 항변하는 남편과 여자 후배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기에 그랬다는 부인 간에 소위 ‘깻잎 전쟁’이 생긴 것이다. 남편 속내는 모를 일이니 뜨끔했을지도 모른다. 과도한 의심과 오해일 수도 있다. 평소에 의심받을 만한 짓을 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행동이 당연히 나쁜 의도일 것이라고 단정 짓고 매도하는 것이 올바른지는 모르겠다. 그 정도로 믿지 못하면 같이 살 이유가 없다. 생사의 기로에 선 남북 대사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밥을 먹고 있다. 남한대사의 부인이 깻잎을 먹으려는데 잘 떼어지지 않..
녹색성장이 화두가 된 지도 오래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전략으로 선언했다. 하지만 한국의 녹색성장은 구호에 그쳤고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약진했다. 2020년 현재, 한국은 38개 OECD 회원국들 중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여전히 줄지 않고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특히 독일의 경우와는 극명히 대비된다. 2010년부터 2020년 사이 독일 발전량에서 석탄화력 비중은 43%에서 24%, 원전 비중은 22%에서 11%로 줄었고, 대신 재생에너지 비중은 19%에서 45%로 치솟았다. 같은 시기 한국의 석탄화력 비중은 42.3%에서 35.6%, 원전 비중은 31.3%에서 29.0%로 소폭 하락했고, 재생에너지 비중은 1.7%에서 6.6%로 올랐다. 2010년에는 독..
야콥 할그렌 주한 스웨덴 대사가 3년의 임기를 마치고 돌아간다. 할그렌 대사는 분쟁조정 전문가로, 부임 전 스웨덴의 외교정책 싱크탱크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부소장으로 일했다. SIPRI는 북·미 정상회담의 사전 조율을 주관한 기구다. 임기 중 한국·스웨덴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양국 정상의 국빈 방문이 있었고, 남·북·미 정상회담 준비에도 관여했으니 첫 부임지에서 알찬 임기를 보낸 셈이다.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면 그사이 주름이 부쩍 늘었는데 일 때문이 아니라 “한국이 너무 아름다워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다녀서”란다. 임기를 연장해 좀 더 머물고 싶었지만 가족회의를 통해 스웨덴에 돌아가기로 결정했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그간의 노고에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이제 한동안 못 보게 된다니 ..
최근 남북관계에 변화가 있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요청으로 남북 통신연락선이 복원된 것이다. 남북관계의 개선을 바라던 현 정부에는 희소식이다. 하지만 이어진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한·미연합훈련 관련 담화 발표로 한국 내에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우리의 논쟁이 한·미연합훈련의 연기 또는 규모에 집중되어 있는데 북한이 변화를 만든 원인에 대해 조금 더 집중해 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이는 다발도 아닌 장미 한 송이를 받으면서도 미처 보지 못한 가시에 찔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고 아들 김정은이 북한의 최고 통치자로 등극했다. 당시 한국 내 일각에서는 스위스 유학생활로 서구 제도와 문화를 경험한 김정은이 아버지와는 다른 정책을 택할 것이란 분석과 논쟁이 분분했다...
최근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언론들은 앞다투어 ‘전반적 학력저하’를 문제 삼고 있다. 전반적인 학업성취분포가 M자형을 그리는 가운데 절대적으로 상위권 분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일종의 위기상황으로 인식하는 모양새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내가 보기에 이러한 학력저하의 상당부분은 ‘이해부족’에 있기보다는 ‘연습부족’에 기인한다. 교육이 주력하는 부분은 논리와 추론 등 깊게 이해하는 능력이지만, 실제로 시험점수를 좌우하는 것은 자동화된 연산능력을 강화하는 연습량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성적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게 나오는 이유는 바로 연습에 의한 자동화 훈련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자동화 연습은 지겹고, 그래서 흥미도가 떨어진다. 우리나라 학..
‘우리는 불완전한 지식에 터잡은 어떤 예언에 우리의 구원을 의존한다.’ 홈스 판사가 사상의 자유시장 이론을 설파한 소수의견에 나오는 문장이다. 진실은 누군가에 의해 배타적으로 점지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발언으로부터 현출된다(emergence). 명제가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사실과 다르고 불명확한 ‘공익’을 해한다는 이유로 형사 또는 민사적으로 벌하는 제도, 즉 허위사실유포죄에 대한 국제인권과 헌법의 평가는 명백하다. 불완전한 의혹 제기들이 가능해야 진실이 현출될 수 있는데 어떤 명제가 당장 근거가 부실하다고 하여 처벌하게 되면 진실은 영원히 현출되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표현에 대한 제한은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명예훼손, 사기 등을 제재하는 이유는 특정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