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정부는 1964년에 캐나다로부터 비버 50마리를 수입해서 ‘티에라델푸에고’(Tierra del Fuego)라는 남쪽 끝 섬에 방목했다. 캐나다 서식지와 비슷한 이 섬의 울창한 숲에서 비버를 키워서 비버 모피산업을 육성할 목적이었다. 그런데 기대와 정반대로 비버 방목은 티에라델푸에고 국립공원의 울창한 숲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았다. 북미지역과 달리 비버의 천적인 곰이 없었기 때문에 비버의 개체 수는 급속히 늘어났다. 비버는 나뭇가지 등으로 집을 만들고 나무껍질을 먹기 위해 나무의 밑동을 갉아서 나무를 쓰러뜨린다. 그런데 북미와 달리, 남미의 많은 나무들은 잘린 밑동에 묘목을 심어 나무를 재생시킬 수 없었다. 따라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비버가 훼손한 삼림은 회복 불능한 상태가 되었다. 천적의 존재..
세계적으로 증세 논의가 활발하다. 시장만능주의가 야기한 양극화와 코로나19 재난에 대응하는 노력의 하나이다. 우리나라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현재 국회에서 심의하는 추경안을 보더라도 올해 관리재정수지가 126조원, GDP 6.2%로 공공재정의 역할이 계속 커지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증세 제안을 찾기 어렵다. 올해 초과세입을 감안해도 조세부담률은 GDP 20% 수준에 그친다. OECD 회원국 평균에서 약 5%포인트, 금액으로 약 100조원이 부족하다. 당장은 국채에 의존한다 해도 지속 가능한 재원으로 세입 확충은 꼭 준비해야 할 일이다. 왜 증세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우리나라 조세 지형의 변화를 살펴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정치권의 증세 초점은 최고세율이었다. 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세상이 뒤바뀌던 시기 새롭게 나라를 세워 다스리던 임금은 지도를 만들라 명했다. 신하들은 주변국의 지도를 모아 새로운 나라를 큼직하게 그려넣은 세계지도를 그려 임금에게 바쳤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이니 유럽과 아프리카가 그려진 현존하는 동양 최고의 세계지도임에 틀림없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지 10년 후 태종 2년(1402)에 완성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이야기다. 당시의 세계지도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뛰어난 지도 중의 하나로 평가되지만 안타깝게도 원본은 전해지지 않는다. 사본만 일본 류코쿠대학에 남아 있다고 하니 이 역시 하루속히 되찾아 와야 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지도 중앙에는 중국이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고 동쪽에 조선과 일본이 그려져 있다. ..
최근 일어난 사건들은 또다시 대학과 학계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여주었다. 대학과 학계 바깥에 있는 시민들도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셔야 한다. 연구윤리는 사회윤리며 민주주의의 문제다. 거액의 세금이 대학과 학계에 지원되고 있는데 부정·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사회의 지배계급과 최상층 부자들은 ‘논문’으로 자녀의 스펙 사냥을 하고, 학벌과 학위를 직간접 구매한다. 그들은 돈과 정치권력 외에도 상징권력과 문화적 ‘능력’을 독점하려 한다. 학위·학벌 사냥은 위로부터의 ‘구별짓기’와 계급지배의 주요 수단이다. 이를 위한 만만한 카운터파트가 일부 대학과 교수들이다. 학술논문을 한 편이라도 제대로 발표해본 사람들은, 이제 하나의 밈이 된 ‘유지(Yuji)’ 논문 같은 것이 어떻게, 왜, 존재하는지 안다. ..
열흘 후면 77명의 목숨을 앗아간 노르웨이 테러 10주기다. 백야로 눈부신 북유럽의 여름에 짙은 어둠을 드리운 사건이다. 2011년 7월22일 오후 3시25분, 오슬로 중심가에 거대한 폭발음이 울렸다. 총리 집무실이 있는 17층짜리 정부청사가 흔들리고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먼지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거리에 쓰러졌고, 피 묻은 구두와 옷가지, 돌과 유리 조각이 나뒹굴었다. 8명이 목숨을 잃고 209명이 다쳤다. 목격자들은 마치 전쟁터 같았다고 증언했다. 같은 날 오후 4시57분, 북동쪽으로 35㎞ 떨어진 우퇴위아섬에 경찰 제복을 입은 남자가 도착했다. 섬에는 당시 노르웨이 집권당이었던 노동당의 청년 캠프가 진행 중이었다. 제복을 입은 남자는 공지사항이 있다며 참가자를 섬 중앙에 소집했다. 모여든 600여명..
근년 들어 미·중 전략적 경쟁에 대한 현황과 전망, 그리고 한국의 대응 방안 찾기는 관련 학계와 전문가 집단에서 주요 화두가 되어왔다. 물론 현재 한국 사회는 부동산 문제를 필두로 코로나19 방역 및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정책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의 미래 먹거리가 걸린 첨단산업의 국제표준과 규범,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안착, 나아가 역내 군사·안보적 지각 변화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칠 미·중의 경쟁도 결코 작은 주제는 아니기에 이에 대한 논의 또한 뜨거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요즘 들어 우리의 시야가 미국과 중국에만 너무 집중되어 있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경쟁의 당사국들이자 세계 1, 2위의 강대국이니 이들의 정책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최근 유럽연합(EU)..
“천재일우의 기회다.” 2017년 5월 대선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한 말이다. 당시 진보의 상징이었던 문재인 대통령, 경기도 교육감 시절 혁신학교 바람을 일으켰던 김상곤 교육부 장관, 그리고 자신을 포함해서 새로운 진보개혁의 삼두마차가 완성되었다고 본 것이다. 촛불혁명을 배경으로 한 이런 분위기는 그해 출범한 국가교육회의로까지 이어지면서 나름 교육변화의 새로운 바람이 불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졌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었다. 김상곤 장관은 우왕좌왕 시간만 보내다 물러났고, 뒤이은 유은혜 장관은 정치인 출신 장관이라는 배경이 무색할 정도로 현실관리에만 급급했다. 전국의 진보교육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국가교육회의도 세간에 “숙의만 있고 결론이 없는..
개혁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것이 무얼까? 이념의 충돌일까? 하지만 각자의 이념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념의 충돌을 장애물이라고 보는 것은 여행자에게 여행의 장애물이 이동거리라고 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느 한쪽의 이념이 옳다고 가정했을 때 장애물이 무엇일까? 현실과 이상의 충돌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실에는 국경도 있고 집단도 있고 감정도 있지만 이상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 결국 100년 앞을 내다볼 때 이상적인 개혁과 당장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는 개혁 두 가지 중 어디에 더 중점을 둬야 하는지 혼돈이 생긴다. 명예훼손 모욕 형사처벌이 국제인권법에서는 이미 수십년 동안 인권침해적이라고 비판받아왔지만 당장 체면을 구긴 피해자의 법감정에 신속한 검찰의 칼날만큼 카타르시스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