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총소리가 들린다. 인근에 군부대가 있다. 하루 종일 탕 탕탕 탕탕탕 소리를 듣고 있으면 두통에 현기증까지 생긴다. 포격 훈련은 더 심하다. 쿵 쿠웅 콰르르 땅이 울린다. 어떻게 사셨어요? 나도 처음엔 놀랐지, 시집와서 밭 매다가 뒤로 쿵 주저앉았지 뭐야. 평생 살아온 분은 살다 보니 적응이 됐다고 한다. 소도 나랑 똑같더라고, 주저앉고, 어떤 놈은 유산도 해버리고. 옛날엔 흙벽이 무너지기도 했다는 접경지역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총소리를 들으며 감자도 심고 깨 모종도 내고 산다. 이사 온 동네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나는 종종 풍경에 멀미가 난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의 기묘한 부조화 때문일 것이다. 십여년 전,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논벼가 넘실거리던 마을은, 이제 대규모 시설하우스와 인삼밭으로 ..

아무나 직업군인이 될 수 없다. 국가가 보장하는 안정된 일자리인 데다 연금혜택까지 좋으니 직업군인이 되려면 수십 대 일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단박에 시험에 붙기는 어렵고 몇 년씩 준비해야 하는데, 부사관이나 장교를 양성하는 학과가 설치된 대학만 60개가 넘는다. 이런 사정은 남군이나 여군이나 엇비슷하지만 할당받은 소수 인원만 뽑는 여군이 되는 게 훨씬 더 어렵다. 직업군인이 되었다는 건, 몸과 마음이 튼튼하고 국가가 인정할 만큼의 지적 능력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기본적인 자세도 갖췄다는 거다. 이런 사람들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고 있다. 군대는 모든 출구가 다 막힌 어두운 동굴처럼 변했고 범죄 피해자들은 2차, 3차 가해에 시달려야 했다. 2013년엔 육군 대위가 죽음으로 내몰렸고 20..
안녕하세요? 집부자님들의 든든한 벗, ‘더불어부동산’입니다.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에서 땀 흘리지 않고 돈을 버는 최고의 수단은 부동산입니다. 여러분의 동반자, 정부 정책까지 손에 쥐고 있는 국내 최고 부동산기획사, 더불어부동산을 소개합니다. 우선 지난 성과를 알려드립니다. 최대 경쟁사인 ‘국민의부동산’이 노골적으로 부자마케팅을 벌여왔지만 실속을 챙기는 건 저희 회사입니다. 알려져 있듯이, 저희는 밖으로는 서민 주거 안정을 표방합니다. 지금까지 부동산시장이 불안하다며 외부에 제안한 대책만 26번입니다. 사람들이 서민 주거를 위한 회사로 여기는 이유이지요. 하지만 정작 저희가 한 일은 집값을 끌어올렸다는 겁니다. 단어 그대로 폭등, 대박입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을 볼까요. 국민의부동산이 ‘명박부동산’ 간판으로..
집집마다 구걸하며 걷다가 황금마차를 만났다. 이제 그 저주스러운 세월도 끝났구나 하는 희망을 안고 쏟아질 보배를 기대하며 서 있었다. 그런데 마차에서 내린 사람은 “너는 내게 무엇을 주려 하는가?”라며 손을 내밀었다. 나에게 오히려 무엇을 달라 하니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구걸해 얻은 밀 한 톨을 봇짐 속에서 꺼내 건넸다. 날이 저물어 봇짐을 쏟아놓고 보니 작은 금구슬 한 알이 보여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내 가진 것을 남김없이 모두 드리지 못하였음이 몹시도 안타까웠다. 타고르의 시집 에 나오는 이야기다. 2018년 우리는 평화라는 황금마차를 만났다. 평창 올림픽이라는 천우신조의 기회가 있었다지만 시작은 2017년 12월19일 강릉으로 향하는 KTX 안에서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 NBC와의 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대학가에서 가장 크고 힘이 센 이익단체다. 4년제 대학의 총장들만 회원이 될 수 있는 대교협은 매년 1000억원이 넘는 국민의 세금(‘국고보조’)으로 운영된다. 충원 위기로 전국의 대학들이 ‘곧 쓰러진다’ ‘다 죽는다’ 아우성이지만 대교협은 여유가 있는 모양이다. 대교협 이사회는 지난 3월, 5월에 각각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렸다. 그럴 만한(?) 것이 2020년 대교협의 수입은 1416억원에 순이익이 7억7000만원이었다. 대입가이드 라인을 만들고 대학정보를 모아 공시하고 대학입시 박람회를 여는 등의 국가적(?) 사무를 대행하면서 생긴 수입이다. 또 대학정책에 관련된 총장들의 목소리를 모아 높이고 교원을 지원하고 직무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일도 한다 한다. 그런데 어찌 된..
다음으로 대통령께서 묘도 개발계획을 발표하시겠습니다. “취업준비 중이신가요? 새로운 일자리와 살기 좋은 환경을 찾고 계시다면 남쪽으로 눈을 돌려봐 주시기 바랍니다. 코로나19 이후 장기실업자가 늘고 있습니다. 수출 호조로 GDP에는 큰 타격이 없지만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사회에 위험 신호입니다. 누군가를 소개할 때 이름 다음에 말하는 것이 직업입니다. 직업은 개인의 존엄, 삶의 목적, 자신감의 바탕이 됩니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일을 통해 가족을 부양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갑니다. 규칙적인 활동과 적당한 과업은 신체뿐 아니라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데도 중요합니다. 한 사회의 실업률이 올라가면 자살률, 가족해체, 범죄가 늘어납니다. 따라서 일자리는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건강한 사회의 뒷면에..
영국에서 개최되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G7과 더불어 초청된 한국의 참석은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와 선진국의 위상을 확인하는 데 긍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다. 반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현안별 요구에 대해 한국 정부의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 또 다른 시험 무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G7에서는 대만해협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미·일 협력 강화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루어질 것이다. 이 현안들은 다음달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앞둔 시진핑 지도부에도 정치적 및 국가안보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임에 분명하다. 따라서 G7의 결과에 따라 한·중관계의 도전요인들에 대한 한국의 관리 능력이 다시금 시험받게 될 수 있다. 그간 문재인 정부는 친중정책을 펼친다는 평가와 함께 미국에 대해 자주적인..
‘상대적 서열화’의 문화가 우리 사회 곳곳에 팽배해 있다. 상대적 서열화란 서로 비교된 차이를 수직적 우열관계로 재배치함으로써 사회적 질서의 기준으로 삼는 방식을 말한다. 학교에서 상대평가로 매겨지는 성적과 등급, 상대적으로 서열화된 대학들, 연봉에 의해 서열화된 일자리들, 수도권으로부터의 거리로 서열화된 전국 시·도, 은행 신용등급 등등. 우리는 서열화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학교는 이런 서열화를 어릴 때부터 조장하고 익숙하게 하는 핵심 장치이다. 자신이 몇 등급에 해당되는지를 어릴 때부터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그렇게 습득된 서열화의 체험은 나이를 먹어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증폭될 뿐이다. 사회는 서열화 프레임을 모두에게 강요하며, 우리 스스로도 그런 서열 안에 자신을 가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