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영도다리 1971년, 2022년 영도다리. 셀수스협동조합제공 아버지는 자신도 본 적이 없는 부산 영도다리를 가족들에게 설명했다. “다리가 하늘 위로 솟구치면 그 밑으로 큰 배가 지나간다”는 아버지 얘기가 신기하면서 거짓말 같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북한군 침략으로 피란민들은 남쪽으로 내려갔다. 피란길에서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거듭 상기시켰다. “엄마, 아버지랑 헤어지면 어디서 만나자고?” “영도다리요.” “어디라고?” “영도다리.” 일제강점기 1934년에 세워진 영도다리는 다리길이 214m 중, 교각 사이 한쪽 다리 상판 31m가량이 80도 이상 들어져 올라가는 한국 최초의 도개교(跳開橋)로 부산의 명물, 랜드 마크다. 그래서 영도다리는 아이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어른들은 판단했다. 이산가..

자율규제라는 말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선진국은 다 자율규제를 한다는 것이다. 그건 아마도 신자유주의가 세계적 조류가 되고, 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한국 사회가 세계 시장에 급속도로 편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말을 신봉하는 이들의 마음속에는 정부 규제나 강제력을 동원한 규제는 악한 것이라는 신념이 자리 잡고 있는 모양이다. 규제가 무엇인지, 강제력을 수반하지 않는 규제가 과연 쓸모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고 학문적으로도 오랜 논쟁거리라서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논쟁에 참여하는 이들은 모두, 뭔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에 맞는 최적의 수단으로, 경직된 정부 규제 일변도의 틀보다 더 좋은 규제를..

주한미군 우주군사령부 창설식이 지난 14일 경기 오산공군기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주한미군 우주군 사령부가 지난 14일 경기도 오산기지에서 출범했다. 미 우주군 사령부는 2019년 12월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공군기지에 본부가 만들어졌고, 야전군으로는 지난 11월 하와이의 인도·태평양사령부, 12월 플로리다의 중부사령부에 설치됐다. 오산 우주군 사령부는 미국 영토 밖에 설치된 첫 사례이다. 우주군은 외계 생명체나 물체로부터 지구를 방어하기 위한 조직이 아니다. 적국이 높은 고도로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위성 시스템을 파괴하려 시도하는 경우 등에 대비하는 부대이다. 원래는 공군 산하에 두려 했으나 2018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러시아를 의식해 별도의 군사령부로 두도록 했다. 미군은 ..
‘나도 정치병 환자인가?’ 가까운 지인들이 가끔 정치 과몰입을 지적할 때면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SNS나 칼럼 등의 글에서 감정이 들끓는 정치적 발언을 여과 없이 쏟아내는 경우가 많아서일 텐데, 그럴 때마다 나는 살아가는 일이 다 정치인데 어찌 정치에 무관심할 수 있겠느냐며 대충 화살을 피하곤 한다. 속으로는 ‘이 신나고 흥분되는 일을 어찌 멈추라는 거냐’고 중얼거리지만. 그렇다. 비록 말이 전부이긴 하지만 정치에 관여하는 데서 희열과 보람(?)을 느끼는 나 같은 부류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치를 피곤하다고 말하고 짜증스러운 정치놀음으로부터 일상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두 부류에는 공통점도 있는데, 양쪽 다 정치를 눈앞에서 벌어지는 시끄럽고 뜨끈뜨끈한 현실 정치의..
재난 보도를 비롯한 재난 수습 지침서는 재난으로 해체된 공동체 회복과정에서 ‘원인 규명’과 ‘책임 추궁’을 잘 구별해서 다루어야 하고, 책임 추궁이 원인 규명에 앞서지 말아야 한다고 깨우친다. 책임 추궁이 선행할 경우, ‘회피 전략’이 횡행하여 원인 규명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원인 규명과 책임 추궁 두 가지를 분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고, 책임 있는 자들의 ‘의도적 회피’가 원인 규명을 어렵게 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책임 추궁을 단호하게 앞세워야 할 때도 있다. 이상민 장관의 경우가 그렇다. 그가 이태원 참사에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으로서 이런 충격적 참사가 발생했는데도 아무 일 없다는 것처럼 버티고..

마당을 가진 집집마다 의자가 한 개쯤 꼭 있다. 나도 마당에 세어보니 의자가 여기저기 흩어져 여러 개. 내가 아니라도 새가 앉고 가끔 메뚜기나 사마귀, 무당벌레도 앉아. 흔들의자처럼 편한 그네도 하나 있는데 강아지랑 나는 보통 거기 앉거나 누워 해바라기를 즐겨. 발이 네 개인 의자는 울 강아지들처럼 정신없이 돌아다니지는 않아. 컹컹 짖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고요해. 온종일 인내심을 가지고 쭉 기다려. 영국 사람들에게 흐르는 습관이 하나 있는데 ‘기다리며 차를 한 잔 마시는 일’이다. 이때 보통 쓰는 말이 ‘서두르지 말 것(Take Your Time)’. 기다리다 보면 1. 일이 저절로 해결되는 수가 있다. 2. 내 마음이 변하고, 일이 달리 보인다. 3. 모든 일은 결국 때가 있기 마련이다. 독일 작가이..
“지역은 죽어가고 있는데 아무런 처방 없다가 이제 시한부 선고를 하고 감기약을 처방하고 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고향사랑 기부제’ 도입을 앞두고 개최된 콘퍼런스에서 인구 소멸 위기를 겪고 있는 강원도 한 군청 팀장의 첫 발언이다. 이어서 “고향세를 통해 우리 지역이 얻고자 하는 것은 재정 확충보다 ‘인구’다. 땅은 넓고 사람은 없다. 출생률, 귀촌 인구를 늘려서 막아보자는 정책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대신 일상으로의 초대, ‘관계인구’를 넓히는 게 핵심이다”라고 했다. 짧지만 임팩트 있는 발표는 진한 여운을 남겼다. 기존 귀농·귀촌 정책의 획기적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늘고 있는 가운데 새롭게 등장한 ‘관계인구’가 주목을 받고 있다. ‘관계인구’란 체류시간에 관계없이 지역의 팬으로, 상품 구매..
2022년이 보름 남짓 남았다. 각종 결산의 시기, 한 해를 결산하는 기사들도 쏟아져 나온다. 역대급이라는 숫자 뒤, 팍팍한 현실이 그려지는 뉴스들이 적지 않다. 하나하나가 수백만 가구, 수천만 시민의 한숨과 눈물, 불안을 담고 있을 ‘폭탄’들인데, 건조한 몇 줄로 무감각하게 소비된다. 올해는 자산 상위 20% 가구(16억5457만원)와 하위 20% 가구(2584만원) 간 자산 격차가 64배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실질소득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로 줄어든 가운데, 양극화가 뚜렷했다. 하위 20%의 소득 감소율이 상위 20%보다 3배 이상 커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졌다. 소득 하위 20% 중 적자 가구 비중이 57.7%에 달했고, 이들은 월평균 34만3000원씩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