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했던가. 지난해 3월4일 정치에 뛰어들겠다며 검찰총장직을 사퇴한 윤석열 대통령의 마지막 퇴근길. 윤 대통령이 대검 청사 로비 엘리베이터에서 뒷짐을 지고 직원들 앞으로 걸어나오는 장면에서 든 예감이다. 뒷짐지기는 쇼트트랙 선수들도 하지만 흔히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려는 사람들이 보이는 자세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의 걸음걸이에서 폐쇄적인 최고 사정기관에서 27년을 보내며 몸에 배었을지 모를 권위주의와 엘리트주의,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가 연상됐고,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어떻게 발현될지 서늘한 느낌이 왔다. 국민통합의 책무를 지는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 달라지지 않을까. 자기확신 속에서 오래 살아온 중년의 인격이 바뀌는 것은 물고기가 나무에 오르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긴 세..
지방선거는 정치의 본질이다. ‘이 골목 주민이 한 말을, 저 골목 주민도 했다면 그게 민심’임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골목의 욕망이 마을의 서사로 나아가는 화두가 나의 일상임을 구체적으로 깨닫게 한다. 지방선거는 공중전에 묻어가기도 하는 대선, 총선과 달리 직접 온몸을 불사르는 지상전이다. 그 지상전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참패했다. 3·9 대선 대비 약 650만표(최소 42.6%)가 이탈했고, 호남은 37.7%만 투표했고, 핵심 지지 기반인 40대는 40%대 초반 투표율에 그쳤다. 심판, 응징도 과하다며 용도 폐기라는 평가도 있다. 쏟아지는 반성문은 오십보백보다. 대하소설 에서 남측 빨갱이를 지칭한 ‘수박’이 등장하고, 대선 득표가 순정한 지지인 줄 착각하는 ‘졌잘싸’가 회자된다. 마무리는 이번에도 김대중·노..
드라마 는 불행한 시대를 건너왔던, 지금도 거친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지인과 외지인이 제주를 무대로 얽히고설키며 변화하는 내용이 드라마의 줄기다. 주인공 은희는 생선 비늘 털어내듯 억척스러운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제주 푸릉마을의 생선 장수다. 은희는 딸의 골프 유학 뒷바라지에 빚투성이로 고향 제주에 떠밀려온 첫사랑 한수와 30년 만에 마주한다. 두 사람은 동창회에서 ‘위스키 온더록’이란 노래를 함께 부르며 고단했던 지난 세월을 위로했다. 하필 이 노래가 주제곡이었을까. 당초 ‘암초 위에 좌초된 배’를 뜻하는 말이었던 ‘록’(rock)은 19세기 미국 서부개척시대엔 다이아몬드를 뜻하는 광부들의 은어였다고 한다. 현지인과 외지인의 뒤섞임, 좌초된 배와 깨지지 않는 다이아몬드. ..
점입가경이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힘겨루기가 가파르게 이어진다. 배수진에 더해 파부침주(破釜沈舟)의 각오로 싸우겠다는 결기마저 읽힌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둘러싼 정치권과 검찰의 충돌이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다음달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취임 전에 입법을 마무리하려는 더불어민주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검찰의 사활을 건 싸움이 진행 중이다. 민주당이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추진하는 ‘검수완박’, 즉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의 요체는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폐지하는 것이다. 검찰이 수사와 수사지휘, 기소까지 깡그리 챙겨가면서 권력 독점이 생겼다는 이유에서다. 법안이 통과되면 검찰은 앞으로 공소 제기와 유지 정도만 하게 된다. 입법이 구체화되자 검찰의 거센..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자가 1명인 경우 득표수가 선거권자의 3분의 1 이상이라야 당선된다고 헌법 제67조 제3항이 정하고 있다. 투표한 사람이 아니라 선거권 가진 사람의 3분의 1이다. 지금껏 단독후보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적은 없지만, 그래도 이 기준을 적용해보면 당선이 가능했던 대통령은 김영삼(33.9%), 노무현(34.3%), 박근혜(39.0%) 세 사람뿐이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당선한 윤석열 후보(37.1%)와 낙선한 이재명 후보(36.5%)가 모두 선거권자의 3분의 1을 넘겨 득표했다. 단독 출마가 아닌 경우 최고 득표자가 당선한다고 헌법 제67조 제2항에 정해져 있다. 이 최고 득표자를 정하는 방식은 공직선거법에 있다. 현재는 한 표라도 더 받은 사람이 이기는 상대다수결이다. 이것을 바꿔 ..
일상을 이기는 혁명은 없다. 고정관념을 깨기란 어렵다는 의미다. 젠더 문제가 유독 그렇다. 한 페미니스트는 “시작과 종말이 동시에 진행됐던 게 페미니즘 역사”라고 말했다. 젠더 평등이 달성됐다며 페미니즘 임무 완성을 말하거나, 젠더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남성이 차별의 희생자가 됐다고 선언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죽지도 않았는데 장사부터 지내려 드는, ‘페미니즘 사망 증후군’이라 할 만하다. 이 증후군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한 대가를 이번 대선에서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제1 야당 대표는 안티페미니즘에 올라타 있고, 집권 여당은 등가일 수 없는 남혐과 여혐을 동시에 배격하자는 위원회를 만들었다.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이 나오고 군대 안 가는 여성에게 권리 4분의 3만 주자고 한 인사가 4년 만에 재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