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대학에서 만난 K는 ‘전도유망한 학과’에 입학했다. 취업난이 극심한 때였지만 이공계인 K의 전공은 취업과 직접 연계되어 특화된 분야였다. 예정대로라면 그도 졸업 후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직행할 터였다. 어느 날 선배들의 모교 방문 행사가 있었다. 그는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자신의 미래를 만나러 나갔다. 말쑥한 슈트 차림일까, 아니면 실리콘 밸리의 개발자들처럼 낡은 티셔츠에 고급 시계를 장착한 모습일까. 현실은 상상과 달랐다. 엉뚱하게도 떡볶이 집, 치킨 집 사장이 되어 돌아온 선배들을 만났던 것이다. 좁은 취업문은 뚫고 들어갔지만, 오래 버티진 못했다. 회사는 자기가 뽑은 인재들을 재교육을 통해 계속 성장하도록 투자하는 대신, 새롭게 혁신된 인재로 갈아치웠다. 물갈이는 파도처럼 이뤄졌다. ..
아재 입장에서 ‘야, 이게 실화냐’며 놀라는 일이 많아졌다. 손흥민 선수가 골든부트를 들고 방긋 웃는 모습도 그랬다. 상상이나 해본 적이 있나, 한국 선수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득점왕을 먹다니. 해리 케인, 쿨루셉스키 등 동료들이 그를 득점왕으로 만들기 위해 기를 쓰고 패스해주는 동료애는 더 놀라웠다. 한국 선수들은 실력이 뛰어나도 언어의 문제, 문화의 차이로 팀과 융화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손흥민은 이를 넘어섰다. 손흥민의 유창한 영어와 독일어가 도움이 됐겠지만, 특유의 미소와 친화력도 빼놓을 수 없다. 손흥민 때문에 동료들도 간단한 한국어는 한두 마디씩 한다고 한다. 토트넘 구단은 구단 인스타그램을 한국어로도 서비스하고 있다. 손흥민이 치르는 국가대표팀 경기도 실시간으로 전한다. 이런 위상, 마..
법무장관에게 인사검증권을 부여하는 대통령령인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와 ‘공직후보자 등에 관한 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관한 규정’(공직정보규정)이 시행되면서 윤석열 정부의 검찰국가를 위한 기초공사가 마무리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세간에는 이 변화를 윤 대통령과 한동훈 장관의 인적관계에만 주목하여 정치 가십처럼 소비하고 있지만 민주공화제가 우리 모두의 공존을 위한 공동선임을 동의한다면 이번 사태를 헌정 차원에서 차분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법무부를 넘어 대통령실, 국무총리실은 물론 국가정보원, 금감원, 공정위까지 법집행기관에 검찰출신들을 전진 배치하는 ‘검찰형 하나회’의 출현은 법무부의 검찰화만으로도 검찰국가의 우려를 낳았던 공권력 사유화의 폐단을 넘어 헌정 차원에서도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시대착오적 ..
지방선거는 정치의 본질이다. ‘이 골목 주민이 한 말을, 저 골목 주민도 했다면 그게 민심’임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골목의 욕망이 마을의 서사로 나아가는 화두가 나의 일상임을 구체적으로 깨닫게 한다. 지방선거는 공중전에 묻어가기도 하는 대선, 총선과 달리 직접 온몸을 불사르는 지상전이다. 그 지상전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참패했다. 3·9 대선 대비 약 650만표(최소 42.6%)가 이탈했고, 호남은 37.7%만 투표했고, 핵심 지지 기반인 40대는 40%대 초반 투표율에 그쳤다. 심판, 응징도 과하다며 용도 폐기라는 평가도 있다. 쏟아지는 반성문은 오십보백보다. 대하소설 에서 남측 빨갱이를 지칭한 ‘수박’이 등장하고, 대선 득표가 순정한 지지인 줄 착각하는 ‘졌잘싸’가 회자된다. 마무리는 이번에도 김대중·노..
앞으로 4년간 지방교육행정을 이끌어갈 시·도교육청의 수장이 선출되었다. 시·도지사는 1995년부터 직선제가 부활하였고, 교육감은 2010년 지방선거부터 직선제가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 교육위원회 선출과 학교운영위원 선거에 의한 교육감 선출에 이어, 주민직선제가 2006년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 명시되고 이듬해 보궐선거부터 적용된 이래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한국전쟁 중 시작된 지방교육자치의 오랜 역사에서 주민 대표성, 즉 ‘민주성’의 가치를 확대한 제도가 교육감 직선제였다.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의거하여 교육감의 정당 소속과 표방은 불허된다. 그러나 교육감을 주민 선거로 선출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행위이고, 선거를 통해 선택받아야 하는 교육감은 ‘정치인’일 수밖에 없..
‘국민의집’ ‘국민청사’ ‘민음청사’ ‘바른누리’ ‘이태원로22’. 윤석열 정부가 대국민 공모를 통해 선정한 대통령 집무실 명칭 후보들이다. 최종 이름은 9일까지 진행되는 국민 선호도 조사 등을 반영해 이달 중 확정된다고 한다. 확정된 이름은 용산의 대통령실 청사에 현판으로 내걸릴 것이다. 기존 ‘청와대’ 대신 한국 최고 권력, 정치의 중심 공간을 상징하는 것이다. 새 건축물과 공간에 이름을 짓고 새긴 현판(편액)을 거는 문화는 역사가 깊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 본격화됐으니 2000여년 전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삼국시대부터 등장해 조선시대에 활성화됐다. 지금 서울 도심의 조선 궁궐을 찾으면 크고 작은 건물마다에 걸린 현판을 만난다. 8월15일까지 열리고 있는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의 특별전 ‘조선의 이..
“6·10운동을 기념하라.”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 선생이 이끌던 한국국민당이 1936년 6월10일 6·10만세운동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선언서는 이렇게 시작했다. 정부가 6·10만세운동을 국가기념일로 공식 지정한 1년 반 전의 일이다. 사학자인 친구가 국사편찬위원회의 자료집에서 발견했다면서 선언서를 e메일로 보내왔다. 선언서를 읽는 순간 지난 2년 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의문 중 하나가 풀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2018년 말 기념사업회 결성에 참여해 국가기념일 지정 등을 추진하면서도 ‘이념을 초월한 독립운동’이라는 사학자들의 말에 마음속 한구석에는 ‘진짜?’라는 의문이 숨어 있었다. 사회주의자들이 6·10만세운동을 일으켜서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들이 거리를 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한국국민당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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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지방선거의 여파로 거대야당의 당내 권력투쟁과 여,야의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놓고 여,야의 대치로 본격적인 원 구성 협상이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6일 여의도에서 바라본 국회 주위로 빨간불이 켜져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선거는 세상을 당겼다 놓는다. 활시위같이…. 세 숫자가 강렬했다. 뚝 떨어진 투표율 50.9%, 광역단체장 12 대 5, 김동연 경기지사의 0.15%포인트 차 역전극이다. 시간 순서가 주는 착시도 있을 게다. 경기도의 반전은 윤석열 정부를 긴장케 하고 거야의 새벽잠도 깨운 죽비(竹비)였다. 한 표 한 표가 모인 민심은 가차 없이 매섭고, 이번에도 오묘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또 졌다. 아니, 이길 도리가 없었다. 관악·강북·금천(서울), 부천·안산·시흥·남양주(경기), 천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