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몸은 당신의 것입니까. 이렇게 묻는다면, 무슨 소린지 몰라 잠시 당황하거나, 혹시 심오한 뜻이 숨어있나 싶어 질문을 곱씹어볼지 모르겠다. 둘 다 잘못 짚었다. 질문은 문자 그대로, 당신의 몸은 당신 것이냐고 묻고 있다. 대답해야 할 이들은 대한민국의 가임기 여성들이다. 지난 18일 ‘저출산 극복을 위한 생식(生殖)건강 증진대회’라는 행사가 이화여대에서 열렸다. 보건복지가족부 연구사업으로 이대 건강과학대에 설치된 ‘캠퍼스 생식건강 증진센터’가 주최하고, 6개 대학의 ‘생식건강 증진 동아리’ 학생들이 참여했다. 건강을 증진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목적이 저출산 극복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건강은 개인의 행복을 위한 것일 뿐,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 ..
김민아 특집기획부장 김연아는 혼자였다. 대기실 복도의 접이식 의자에 반듯이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열아홉, 아직 소녀 티를 벗지 못한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무표정이, 역설적으로, 날선 긴장과 고독을 말하고 있었다. 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김연아의 사진이 가슴을 아리게 했다. 우리는 저 작은 어깨에 얼마나 많은 부담을 안겨주었던가.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김연아는 지난 16일 치러진 국제빙상경기연맹 피겨 시니어 그랑프리 5차대회 프리스케이팅에서 부진했다. 7개 점프 가운데 3개를 실패했다. 전날 쇼트프로그램을 탁월하게 연기한 덕에 우승은 했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선 2위에 그쳤다. 경기 후 그는 “이렇게 점프를 ‘말아먹은’ 게 오랜만이어서 당황스러웠다. (경기 전부터) 사람들의 기대에 못..
하태훈 고려대 교수·법학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부엉이바위에서 스스로 몸을 던짐으로써 정의로운 삶을 참으로 안타깝지만 명예롭게 마감하였다. 답답하게도 아무도 알 수 없다. 그 분이 왜, 무엇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는지. 무리하고도 무례한 검찰수사, 명예와 자존심을 난도질한 언론보도에 의혹을 보내지만 법적으로 따지자면 인과관계는 없다. 책임 있고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따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각자가 그 분의 죽음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편안히 잠드시길 기원하면서 우리 모두 그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는 길을 찾아내는 것이다. 자신의 결백을 스스로 몸을 던져 항변하려 했거나 가족이나 친지를 보호하기 위한 개인적 목적으로 죽음을 선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평생의..
이명원 | 문학평론가 흐린 눈으로 당신의 서거 소식을 발견했을 때, 그것은 너무도 비현실적인 것이어서 믿을 수 없었습니다. 황혼녘에야 날기 시작한다는 미네르바의 올빼미도,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에트나 화산에 몸을 던진 엠페도클레스도 아니건만, ‘바보 노무현’이 그토록 허망하게 우리의 곁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당신과 함께한 우리세대의 청춘 그렇습니다. 당신은 삶을 종결짓는 그 순간조차 바보다운 엄격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에게서 치욕을 견디며 노회하게 와신상담하는 정치가의 모습을 요구하는 일은 어쩌면 모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바보 노무현’은 국회의원답지 않게 비열한 증인에게 명패를 집어던지고, 품위를 고려하지 않는 구어체의 직설..
김봉선 논설위원 그제 서울의 덕수궁 앞. 사람들이 있었다. 남녀노소. 어떤 집단이라 특정짓기 어려웠다. 까만 양복에 검은 넥타이의 상복에서 영문이 새겨진 검은 티셔츠까지 복장도 제각각인 익명의, 무정형의 집단이었다. 추모 행렬은 덕수궁 돌담길을, 서울시의회 앞길을 따라 두 갈래로 흘렀다. 그들은 질서정연했고, 침묵했다. 무엇이 저들을 저 뙤약볕 아래 서 있게 하는지 궁금했다.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데, 그렇다고 즐겁지도 않은데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듯한 그들 마음속에는 무엇이 꿈틀거리고 있을까. 애도와 분노, 울분, 안쓰러움, 동정, 연민의 복합체이되 그 이상의 무엇이 깔려 있는 것 같았다. 이명박 정부와 세상에 대해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듯했다. 휴일 한가운데를 토막내 가족까지 데리고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