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2000년대 초중반 모 기업연구소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남북협력사업의 예측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아지자, 연구소는 기존의 북한연구팀을 경제안보팀으로 전환시켰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던 만큼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명칭이었지만, 남북경제협력보다는 북한발 리스크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선회를 발 빠르게 선언한 셈이었다. 경제안보팀으로 명칭이 바뀐 후 연구의 핵심은 경보(warning) 시스템 개발에 두어졌다. 남북협력 전략은 시나리오 플랜의 하나로만 다루어도 충분했고, 더 중요한 것은 북한발 리스크 관리 체제였다. 그 결과 팀의 연구 방향이 남북관계로부터 글로벌 리스크 관리에 관한 주제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의 경제안보는 당시와는 차원이 다른 얘기가 되어 있다. ..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2연패한 민주당에서는 친문계와 친명계의 책임 공방이 살벌하다. 제도적으로는 당대표 선출 시 현재 대의원 45%, 권리당원 40%로 규정된 반영 비율을 각각 20%와 45%로 조정할 것인가가 뜨거운 쟁점이다. 대의원은 친문계가, 권리당원은 대선과 지방선거를 치르며 유입된 강성 지지층이 두꺼운 친명계가 더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리당원 반영 비율을 높이자는 쪽의 주장은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이 당의 주인인데 지금의 제도하에서는 이들의 더 많은 지지를 받아도 대의원 지지를 못 받으면 낙선할 수 있어서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하고 다른 나라의 제도와 비교해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우선 떠오르는 질문은 이런 것이..
어제는 비가 내렸다. 바짝 마른 대지를 적시는 비를 맞으며 마석 모란공원에 갔다. 현충일인 6월6일은 내 동생의 기일이기도 하다. 벌써 34년 전 동생은 유서 써놓고 몸에 불을 지르고 먼저 저세상으로 갔다. 1988년 6월은 뜨거웠다. 지열이 훅훅 달아올랐고, 대학생들은 88 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공동 올림픽을 개최하자고 판문점으로 달려가다가 연행되던 때였다. 민주화 시대가 열리던 초입, 그해 정치는 여소야대 국면이었다. 직선제로 광주학살의 원흉 노태우가 대통령의 권좌에 앉아 있었고, 그해 8월 총선에서는 여소야대 국면이 열렸다. 1980년 광주학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정치권에서는 정치적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듯했다. ‘민중의 심판으로 학살의 원흉을 처단해야 한다’는 동생의 생각과는 다른 ..
지방선거가 국민의힘의 완승으로 끝나자 윤석열 대통령은 정당 정치적 승리보다 경제와 민생을 얘기해야 할 때라며 이를 위해 협치도 가능하다는 여운을 남겼다. 상황에 따라서는 국민의힘을 견제한 발언으로 볼 수도 있다. 정당 정치적 승리를 통해 여당인 국민의힘이 당내 기반이 약한 윤석열 정부를 통제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의 성패는 주로 야당과의 관계가 아니라 정부와 여당의 관계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 청와대가 더 이상 대통령 집무실이 아니므로 당·청 관계라는 말도 옛말이 되었지만, 어떤 표현으로든 앞으로도 중요하게 회자될 정부·여당 관계는 윤석열 정부에 더욱 예민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윤석열 정부의 등장은 추방된 자의 귀환에 비유할 수 있다. 민주당 정부에서 내쳐진 장수가 국..
바야흐로 검사들의 전성시대다. 검찰밥을 먹어야 관가에서 행세깨나 하고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시절이 되었다. 대통령실은 집사와 문고리부터 인사라인까지 검찰 출신이 꿰찼다. 고위공직자를 추천하는 인사기획관은 검찰 수사관 출신이다. 그를 보좌하는 인사비서관, 고위공직 후보자를 2차 검증하는 공직기강비서관은 검사 출신이다. 법률비서관도 검사 출신이다. ‘대통령의 집사’인 총무비서관, ‘문고리 권력’으로 통하는 부속실장은 검찰 수사관 출신이다. 행정부를 봐도 검사들의 전성시대가 여실하다. 법무부 장차관도, 법제처장도 검사 출신이다. 국정원 기조실장은 물론 총리 비서실장까지 검사 출신이다. 공정거래위원장도 검사 출신이 유력하다. 이게 다가 아니다. 지금 서초동에는 ‘공직 예비군’이 수두룩하다. 문재인 정부 때 윤석..
6·1 지방선거도 막을 내렸다. 낮은 투표율과 여당 압승의 의미를 여야가 곰곰이 되새겨 봐야 한다. 2년 후 국회의원 선거까지 정쟁을 이어갈지, 미래 비전과 정책으로 선의의 경쟁을 시작할지 여야가 선택할 시점이다. 그러나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대한민국의 미래와 국민의 안위에 조그만 진정성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윤석열 행정부와 민주당이 다수인 입법부가 다음 두 가지만은 꼭 협치를 통해 구체적 성과를 내야 한다. 첫째, ‘RE100(재생에너지 100%) 산업단지’ 조성을 신속히 시작해야 한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 실행전략의 핵심 내용은 2018년 기준으로 전체 탄소 배출량의 39%를 차지하고 있는 전력부문의 배출량을 ‘0’으로 줄이고, 38% 정도를 차지하는 산업부문 배출량의 80% 정도를 감축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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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혹시 커피와 정치의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한번 중독되면 끊기 어렵다, 빠지면 빠질수록 돈도 축나고 몸도 축난다, 내용물보다 잔의 화려함에 끌리기도 한다, 거품이 많을수록 커피 양은 적다, 다수가 좋아하는 커피가 꼭 좋은 커피는 아니다. 제 원래 공약은 명품 커피 잔처럼 화려하고 달콤합니다. 하지만 전 그 공약들을 지킬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킬 수 있는 공약만 말씀드릴까 합니다. 제가 만약 시장이 되면 봄마다 보도블록 교체 안 하겠습니다. 쓸데없는 다리 안 놓겠습니다. 정치 비자금 안 만들겠습니다. 여러분이 내신 세금 저 위해 한 푼도 안 쓰겠습니다. 인사 청탁 안 받겠습니다. 이권이 개입된 그 어떤 시정도 안 펼치겠습니다. 안 하겠다고 한 건 반드시 안 하겠습니다.” 10여년 전의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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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씨는 정성과 노력, 인내심을 담아낸다. 연필과 펜을 꾹꾹 눌러쓰는 사람은 물론이고 손글씨를 보는 사람도 그 마음을 느낀다. 2019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의 연구가 이를 입증했다. 한 유기농 식당에서 손글씨체와 활자체로 인쇄한 2개의 메뉴판을 손님 185명에게 보였더니 메뉴판별로 확연히 다른 반응이 나왔다는 것이다. 손글씨 메뉴판을 접한 손님들이 똑같은 메뉴인데도 훨씬 더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여기며 재방문 의사를 표한 비율이 높았다고 한다. 연구진은 이들이 손글씨체에서 식당 주인의 건강식에 대한 애정과 진심을 느낀 것으로 봤다. 컴퓨터·스마트폰이 익숙한 디지털 시대에 손글씨 쓰기는 날로 퇴화하고 있다. 자판을 치는 것보다 익히기 어려운 일이 됐다. 아날로그 감성을 되살려 정성을 알리는 수단쯤으로 여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