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상징하는 단어가 있다. ‘인구소멸’이다. 한반도 남쪽 땅에 사는 사람들이 계속 줄고 있다. 경제활동 가능 연령대의 인구도 이미 줄었다. 비수도권(지방)은 인구 감소에 더해 수도권으로의 이탈까지 겹쳐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수준이다. 지방소멸이 가속화된 지방은 노인들만 남아 있다. 인구소멸은 확고부동한 이론이자 한국의 현실을 대변하는 단어다. 그럼에도 ‘웃픈’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초고층 아파트가 끊임없이 세워지지만 내집 마련을 못하는 서민들은 여전하다. 대신 부동산으로 먹고사는 사람들만 배불려주고 있다. 지방 인구는 줄어들고 수도권으로는 인구가 몰린다. 부산·대구는 물론 큰 공장들이 밀집한 울산도 마찬가지다. 수도권에 모여든 사람들은 그러나 극심한 경쟁에 내몰리고 과밀화에 따른 교통난·주거난을 겪..
인플레이션 국면에서는 상품 가격이 오르면서 실질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에 결국 노동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급격한 물가 상승은 소비 위축과 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정부와 중앙은행의 역할이 막중하다. 중앙은행은 정확한 경기 진단과 과감한 행동으로 돈줄을 조이면서도, 경기 위축을 불러선 안 되기 때문에 역량이 시험대에 오른다. 정부는 가계와 기업의 고통을 덜어줘야 하며 핵심은 균형과 공정이다. 정부에서 인플레 억제책으로 임금 인상을 통제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은 그래서 우려스럽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8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단 간담회에서 “과도한 임금 인상은 인플레이션 악순환을 야기시킬 수 있다”고 말했고, 한덕수 국무총리도 같은 날 세종 총리공관..
서울시장 보궐선거, 대통령 선거,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이 8월 전당대회에 이재명 의원의 출마 여부를 두고 내홍에 휩싸여 있다. 그런데 이런 내홍이 다음 국회의원 선거 공천권을 둘러싼 당권 쟁탈전으로만 보인다는 점에서 민주당은 국민에게서 더 멀어져 가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당은 선거를 통해 행정권과 입법권을 장악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고, 당 조직을 장악하기 위한 내부 경쟁도 이런 과정의 일부이다. 당권 경쟁을 백안시하거나 정당 간 경쟁 자체를 낮춰 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관건은 당권 경쟁이나 정당 간 경쟁의 내용과 방식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내홍이라고 표현한 것 자체가 당권 경쟁의 내용과 방식 모두 실망스럽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와 최근 세 번의 선거를 거치면..
김동연 경기도지사 당선인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경기도정 인수 작업을 마무리하는가 싶더니 여의도 나들이를 시작한다. 며칠 전 그는 민주당 국민통합정치교체 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회의를 주재했다. 이 위원회는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과 그가 후보연대를 하면서 선언한 약속의 하나였는데, 승자독식을 넘어서는 정치제도 개혁을 추진하여 국민통합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도 힘을 실어주면서 세간의 관심은 더 커지고 있다. ‘정치개혁을 통한 정치교체’ 추진은 후보단일화 약속 이행이라는 의미를 넘어서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지난 대선에서 각 후보 진영이 모두 제출한 ‘마지막 약속’이었다. 민주당 의원총회 결의문(2·27)이나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선언문(3·3)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가를 확인..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길게 잡으면 10년, 짧으면 5년? 한국인의 마음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의 내용이 무엇이라고 정확히 특정하기 어렵지만, 그것은 아마도 근원적 가치의 상실과 관련되어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징후들은 이런 것들이다. 예를 들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혐오 같은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은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초창기부터 논쟁적이었던 반면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따라야 할 규범’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86세대가 ‘타는 목마름으로’ 외쳤던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은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 오히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옥죄려고 하는 전체주의적 경향에 맞서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윤석열 대..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아침마다 윤석열 대통령의 육성을 들을 수 있게 된 점이다.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도어스테핑’(Doorstepping·약식 회견)을 꾸준히 하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국민의 궁금증에 답하면서 대국민 소통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평가할 만하다. 대통령실이 “역대 대통령과 비교 불가능한 소통 방식과 횟수를 통해 ‘참모 뒤에 숨지 않겠다’는 약속을 실천했다”고 자평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도어스테핑의 그늘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윤 대통령의 말이 갈수록 거칠어지는 데다, 자신의 생각을 강변하는 경우가 자주 보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일 ‘검찰 편중 인사’ 논란에 “과거에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들이 아주 ..
행정안전부가 경찰국을 통해 경찰청을 통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발표는 ‘권고안’ 형식을 빌렸다. 차관이 공동위원장을 맡았으면서도 위원회 이름은 ‘경찰제도 개선 자문위원회’였고, 여기서 권고를 했다. 일종의 알리바이성 위원회였다. 자문위는 불과 네 번의 회의 만에 행안부가 통째로 경찰청을 장악하겠다는 안을 만들었다. 미리 정해둔 결론을 자문, 회의, 권고 등의 형식에 담았다. 행안부는 경찰국을 ‘지원조직’이라 표현했다. 얼핏 들으면 경찰청을 지원하는 조직인가 싶겠지만 사실은 딴판이다. 객관적으로 표현하면 지원조직이 아니라 관련 부서가 맞겠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말을 꾸민다. 말이야 어떻든 핵심은 정권이 직접 경찰을 장악하겠다는 거다. 여태까지는 경찰청이 자율적으로 움직일 여지가 많았다. 고위직 인사 등 일부..
‘첫 백일’이 중요하다. 대통령 취임 후 백일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국민통합을 이룬 본보기로 미국에서는 루스벨트를 꼽는다. 그가 1933년 취임하였을 때, 미국 성인의 25%는 실업자였다. 은행조차 망해 문을 닫았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시간을 놓치지 않았다. 리더십이 아직 신선하고 새로울 때를 잘 이용했다. 선거 승리를 쟁취한 권위가 최고조에 달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첫 백일에 약 20개의 ‘뉴딜’ 법률안 입법을 밀어붙였다. 아직도 살아 있는 농가신용법과 긴급은행법, 국가산업부흥법 등이 탄생했다. 그는 국민들에게 ‘지금 행동하자’고 호소했다. 그의 첫 백일은 미국을 뭉치게 했다. 미국을 위기에서 구했고 새로운 미국의 시대를 열었다. 한국의 제20대 대통령이 당선된 지 백일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