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 | 칼럼니스트 얼마 전 시골의 작은 집으로 이사하며 대형 카우치 가죽 소파를 버렸다. 정확히 버린 것은 아니고 새로 이사 들어오는 가족이 사용하겠다고 해서 예전에 살던 집에 그냥 남겨두고 왔다.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 같으면 소파를 놓을 거실의 한 벽에 그림을 걸고 커다란 나무 테이블을 놓았다. 책상의 각도는 정확히 거실창을 통해 테라스와 이웃의 더덕밭과 산과 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위치다. 아침이면 그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 다음 뉴스를 보며 아침식사까지 하고 작은 방에서 사무용 나무 의자와 노트북을 가져다 방금 식사를 마친 자리에 놓으면 그 순간부터 재택 근무가 시작된다. 그러다 저녁이 되면 간단한 한 접시 요리와 와인이나 막걸리를 내놓고 음악과 촛불을 켠..
진광 | 운문사 스님 작열하던 폭염도 어느새 스러져 가고, 산사에는 벌써 가을색이 역력하다. 소나무 숲속에서는 가을벌레들이 추추히 울고, 파아란 하늘을 뒷배경으로 흰 구름이 산마루에 걸려 있다. 운문사 개학날, 여름방학을 마치고 다시 운문사에 돌아온 학인스님들과 함께 새벽예불을 올렸다. ‘지심귀명례….’ 법당에서 울려퍼지는 200여 학인스님들의 청아하면서도 장엄한 염불소리에 마음이 맑아진다. 볼라벤과 덴빈 두 태풍이 연달아 휘몰아쳐 전국 곳곳에 많은 피해를 입힌 바로 그때 나는 제주도에 있었다. 치료하러 갔다가 태풍을 만나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였다. 섬에서 태풍의 위력을 제대로 실감했다. 밖을 내다보니 가로수가 뿌리째 뽑히고, 유리 창문이 깨지고, 네거리 신호등이 쓰러지고, 길 건너편 상점의 간판은 대롱..
내년도 대학 수시 1차 모집 마감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학교폭력 가해 사실의 학생부 기재’를 둘러싼 교육계의 갈등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학생부 기재 방침을 고수하는 교육과학기술부와 이에 반대하는 일부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팽팽히 맞서 첨예한 논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교육시민단체와 정치권도 찬반 입장으로 갈려 가세하고 있다. 수험생과 학부모는 물론 대학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학교폭력을 줄여 보려는 교과부의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번 사안은 교과부가 한 발 양보해 서둘러 타협점을 도출해야 한다. 눈앞에 닥친 대입 전형에서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일 뿐 아니라 학생의 인권 보호나 교육적 차원에서도 그렇다. 교장이 학생부를 승인하는 최종 시한인 지난 7일까지 학생부..
김희대 | 전문상담교사·중앙대 교육대학원 교수 ‘왕따’ ‘자살’ ‘비행’ 등 아동·청소년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여기에 우울, 강박, 불안 등 스트레스로 말미암은 정신건강의 문제도 크게 증대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문제가 모두 나타나는 대표적인 곳이 학교 현장이다. 정부가 이들 문제의 해결책으로 2005년 지역교육청에 전문상담순회교사를, 2007년부터는 학교에 전문상담교사를 배치하기 시작해 현재 883명이 학교와 교육청에서 학교상담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하고 있다. 지난해 대구, 광주, 대전 등에서 학교폭력 피해학생의 연이은 자살사건을 계기로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부각되어 올 2학기에는 500명의 전문상담교사가 학교에 추가 배치되고 내년에는 1000명이 충원될 예정이다. 이는 학..
강명관 | 부산대 교수·한문학 나는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다. 1993년도 부임한 이래 돌아가면서 맡는 학과장을 제외하고는 어떤 보직도 맡아본 적이 없다. 내가 아니라도 능력 있는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또 대학 내 최대의 정치행사인 총장 선거에서는 어떤 진영에도 속한 적이 없다. 그저 선거 날 내가 좋다고 판단한 후보에게 한 표를 던졌을 뿐이다. 이렇게 해서 20년 동안 아침 일찍 연구실에 나와 저녁 때까지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부산대 총장실에서 9일째 잠을 자고 있다. 부산대 총장이 원래 직선제를 고수하기로 한 자신의 공약을 뒤엎고 교수들의 중의를 무시하며, 총장 직선제를 폐기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총장 직선제는 1953년부터 시행되다..
김석 사회부 차장 이란 책이 있다. 2005년 상당히 인기 있었던 책이다.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 스티븐 레빗 교수와 저널리스트인 스티븐 더브너가 함께 썼다. 이 책은 일상생활 속에 숨겨진 어두운 이면을 다루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학교의 시험이다. 미국 시카고의 공립학교들은 1996년 ‘고부담’ 시험 제도를 도입했다. 시험점수가 낮은 학교는 교육당국의 엄한 관리를 받게 되고, 교사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하거나 해고되기 때문에 ‘고부담’ 시험이다. 학생들이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교사들은 더 열심히 가르치도록 하고, 학생들은 더 열심히 공부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책 안에 정확한 수치는 없지만 시카고 공립학교들의 성적은 올랐던 것 같다. 그런데 성적..
이현우 | 서평가·필명 ‘로쟈’ 초등학교 때의 일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속독법 특강이 있었다. 속독의 필요성과 요령에 대한 내용이었다. 비슷한 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TV프로그램에서도 속독술을 ‘묘기’로 보여주기도 했다. 몇십 초 만에 책 한 권을 다 읽고 질문을 알아맞혔다. 속독술은 진기한 기술이면서 부러운 능력이었다. 한창 책을 많이 읽고 독서에 대한 욕심도 컸기에 같은 책을 구해서 연습을 해보기도 했다. 안구운동법과 함께 지금도 생각나는 요령은 독서의 단위를 단어에서 문장, 문단으로 점차 확장해나가는 것, 대각선으로 읽어 내려가는 것 등이다. 크게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연습량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었겠지만 시집을 읽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툼한 소설책이라면 속독이 요긴하겠지만 ..
김성관 | 서울 배재중학교 교사 최근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렸다. 2007년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된 이유는 인터넷을 통한 악성 루머, 인신공격, 사생활 침해 등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인터넷에 의견을 게시할 때, 이용자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해 인터넷의 역기능을 해소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공익의 효과가 명백하지 않고, 그 실효성도 부족하다고 보았다. 헌법재판소의 인터넷 실명제 위헌 판결은 인터넷 이용자를 자율의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이제 그 어떤 제도적 조치보다 선행돼야 할 것은 인터넷 이용자들의 자발적인 자정 노력이다. 네티즌 스스로가 건전한 윤리 의식을 가질 때, 비로소 성숙한 인터넷 문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