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길을 가다가 길을 잃어버려 지나는 사람에게 길을 묻는다. 알아야 면장을 하는데, 그 일대의 길을 자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길을 묻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경상도식으로 “저쪽으로 잊어버리고 가이소”라고 말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무뚝뚝하게 “저 쪽으로 가면 됩니다” 하고 고개를 돌리는 경우도 많이 있다. 아니면 매우 친절해서 자세히 얘기하는 바람에 시간을 너무 허비하는 경우도 많다. 그 사람의 말을 자를 수도 없고, 길을 내가 먼저 물었기 때문에 그냥 돌아서 갈 수도 없다. 일행들은 저만치 갔는데, 그 일행들을 따라서 나도 가야 하는데, 헐레벌떡 따라갈 생각에 시간이 여삼추 같은 때가 그런 경우다. 어느 순간 내 앞에 길이 펼쳐져 길 위에 나섰고, 끝인가 싶으면 다..
이중근 기획에디터 그제 최전방인 강원도 인제군 원통리에서 필자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주말에 원통초등학교에서 봄 운동회가 열리는데, 그 자리에서 경향신문의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www.7promise.com)’ 캠페인에 동참해 서명운동을 하려고 하니 기사가 실린 신문을 보내달라는 요청이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그곳에서 지역아동복지센터 ‘설악산 배움터’를 꾸려나가고 있는 이주상씨(30)였다. 고향도 아닌 곳에서 2년째 지역사회를 위해 배움터 활동을 하고 있는 이씨의 말은 이랬다. “(군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자 면소재지인) 원통의 교육열이 꽤 높아 거의 모든 아이들이 학원에 다닌다”며 “(방과후 활동을 주로 하는) 우리 배움터도 예체능 위주 특별활동 프로그램을 많이 하다 보니 공부를 많이 시키..
허인영 |‘함께걷는아이들’ 사무국장 은평 아이드림오케스트라에서 트럼펫을 부는 영주는 게임을 하자는 친구의 유혹을 물리치고 연습장소로 향한다. 일주일 뒤로 다가온 연주회를 위해 연습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트럼펫을 배우기 전, 영주는 트럼펫이 어떻게 생긴 악기인지 몰랐다. 음표를 몰라도 악기를 배울 수 있다는 단원 모집공고와 선생님의 권유로 2년 전 시작한 트럼펫 레슨은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이제는 재미가 붙었다. 친구들의 폭력과 따돌림, 성적비관으로 작년 한 해 자살한 청소년은 150여명에 이른다. 입시지상주의 교육이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몰고, 우정과 협력의 장인 학교가 양육강식의 장이 되었다. 아이들은 친구의 폭력에 무관심하며 약자를 배려하지 못한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
인병선 | 짚풀생활사박물관 관장 전국의 사립박물관이 교육기관으로 바뀌고 있다. 올해 정부가 사립박물관 59곳에 교육사 한 명씩을 배치했다. 즉 에듀케이터라고 하는 새로운 인력을 투입한 것이다. 현재 한국의 사립박물관 수는 총 250여개다. 문화관광체육부가 이들 사립박물관을 본격적으로 교육기관으로 바꾸려 하는 데는 그만한 동기가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창의적 체험활동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교육정책을 전환한 데다 올해부터 주5일 수업이 실시되면서 사교육기관 아닌 다른 대안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사립박물관은 특수전문박물관으로 종합박물관과 달리 어느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수집·연구해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이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교육 콘텐츠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나다. 그 중에는 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
유인화 논설위원 개그맨의 원조인 전유성은 20여년 전 스승의 날 기념 라디오 방송에서 “예부터 ‘스승은 임금·어버이와 같으므로 감히 스승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스승을 너무 존경하던 나는 선생님의 그림자는 물론 선생님이 계시는 학교 근처도 갈 수 없었다”며 청취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그러나 요즘 전유성의 ‘주옥같은 멘트’처럼 스승을 존경과 사랑으로 따르는 제자가 얼마나 될까. 교사들의 손에서 회초리가 사라진 후 스승을 폭행하는 제자들까지 있다.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을 깨우면 교사가 욕을 먹는다. 아이를 벌하고 싶지만 뒤통수라도 한대 쳤다간 학생인권을 무시한 체벌교사로 몰린다. 학생들이 체벌현장을 인터넷 동영상에 올리면 해당 교사는 그날로 표적이 된다. 별 탈 없이 교사직을 유지하려..
한동섭 |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사회문제의 주된 원인을 찾는 방법을 단순화시켜 말하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사람에서 찾는 것이다. 문제가 지엽적이거나 소수의 사람들에게 국한되어 있을 경우 많이 적용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교화하거나 교체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자유주의적 방법론에 맞닿아 있다. 다른 하나는 문제의 근원을 사회구조에서 찾는 방식인데 주로 사회전반에 걸쳐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에 적용된다. 어떤 문제가 사람들 사이에서 일반적이며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면 그것은 사회구조가 배태한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을 살리는 7가지 약속’에 시민들의 동참이 이어지고 있다 한다. 우리의 교육환경은 누가 보아도 비정상적임이 틀림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캠페인이 서명을 넘어..
김영수 중국전문가 편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산서성에 위치한 진(晉)나라에 한때 도둑이 들끓었다. 백성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때 도둑을 잡는 절묘한 기술을 지닌 극옹이란 자가 나타났다. 이 자는 얼굴의 미간만 보고도 도적을 식별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진나라의 통치자인 경공이 그로 하여금 도둑을 잡게 했는데,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도둑을 족집게처럼 잡아냈다. 국군은 너무 기쁜 나머지 조문자에게 “극옹 하나만 있으면 나라 전체 도적이란 도적은 다 잡을 수 있으니 많은 사람이 필요 없겠소 그려!”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조문자는 “말과 얼굴색만 가지고 도적을 다 잡으려 했다가는 도적을 다 잡기는커녕 극옹도 곧 죽을 겁니다”라고 했다. 얼마 뒤 도적들이 한데 모여 “우리가 이..
배수찬 울산대 교수·국어교육 최근 케이블 텔레비전 방송인 슈퍼액션에서 인기그룹 유키스의 멤버를 주연으로 한 라는 드라마를 방영했다. 연약한 소년이 싸움 기술을 익혀 이른바 ‘짱’으로 거듭난다는 내용으로 된 짧은 4부작 드라마였다. 원작은 일본 만화책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고개를 돌릴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내용 또한 주먹을 쓰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많아, 싸움을 조장하는 터무니없는 드라마로 치부하고 말 수도 있겠다. 그러나 주인공의 한마디 대사는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기필코 강해지고 싶다.” 이른바 ‘학교폭력’이 심각하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긴 하나, 대학에서 아이들을 길러 교사로 키워 나가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요즘 보도되는 상황은 정말 접하기 괴롭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얻어맞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