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그렇지만 한국 역시 농업은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영역이다. 해가 다르게 예상할 수 없는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작물 재배를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야외에서의 논밭 일도 힘들어지고 판매도 불안해진다. 날씨가 불리해질수록 농민들은 시설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고 정부가 권하는 스마트팜과 정밀 농업은 더욱 비용이 들기에 소농은 갈수록 설 곳이 없어진다. 유엔과 세계의 농업 연구기관들은 유기농과 소농이 온실가스 감축의 유력한 대안이라고 말하는데 한국의 상황은 반대다. 지난해에 가까운 선배들과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나는 불쑥 질문을 던졌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만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감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느냐고. 놀랍게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아마도 ..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나는 그동안 밀양 송전탑, 삼척 석탄발전소 반대 집회 등에서 ‘외부세력’이란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그렇게 수도권에 산다는 이유로 ‘외부세력’이 되는 특권을 누렸던 내가 졸지에 내부자가 되었다. 내가 자리 잡은 마포구에 신규 소각장이 들어온다는 소식이다. 사실 나는 소각장 문제를 내 문제로 여긴 적이 없었다. 마포구청장, 서울시장 선거를 치를 때도 일회용 장갑에 반대해 주방 고무장갑을 끼고 투표했지만, 정작 선거에서 왜 쓰레기 문제가 이토록 쓰레기 취급을 받는지는 묻지 않았다. 현재 서울에 있는 소각장은 강남·노원·마포·양천구 4곳이다. 이들 소각장을 다 합쳐 하루 2200t의 생활폐기물을 소각하는데, 서울에서는 매일 생활폐기물 3200t이 쏟아진다. 나머지 1000t은 ..
이건 아마 전 국민 궁금증일 테다. 고깃집에서 삼겹살 1인분을 주문하면 ‘애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거 먹고 배가 찰까 싶다. 그러니 1인분에 그치는 일이 없다. 단언컨대, 건국 이래 건장한 남성 넷이 고깃집에 모여 4인분에 만족하는 사건은 일어난 적 없다. 고깃집 주인의 말을 들어보면 어지간한 사내 넷이면 적게는 6인분, 많게는 12인분도 주문한다. 어느 전직 운동선수 가족은 방송에서 소고기 16인분을 셋이 해치우기도 했다. 덩치 큰 넷이 나오는 다른 방송에서는 1인분만 먹는 걸 불명예로 여긴다. 아무렴 삼겹살 1인분 180g은 도무지 성에 안 찬다. 까닭을 알아봤다. 열량을 셈하면 이해된다. 보통 성인 남성은 하루에 2700㎉, 여성은 2000㎉를 먹어야 한다. 한 끼에 평균 780㎉를 섭취하면..
기후위기 인식과 기후행동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을 너무 믿거나 의지하지는 말아야 한다. 첫째는 기후과학자들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가장 많은 데이터와 경험을 갖고 있는 이들이며, 유엔 기후체제의 중요한 한 축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의 구성원들이기도 하다. 이들이 기후변화의 추세를 전망하고 해법의 얼개를 제시해온 공로가 크지만, 이들이 제시하는 확률의 숫자들은 기후위기를 우리에게 충분히 전달해주지 못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지도 않는다. 게다가, 그들 다수는 과학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방법론만을 사용하고 증명 가능한 결과만을 말한다. 하지만 현실의 기후위기는 그것보다 빨리 그리고 크게 다가오고 있다. 둘째는 언론인들이다. 그들은 홍수와 가뭄 같은 기후위기..
세계 최고 부자 일론 머스크는 왜 ‘세상을 구하는 기술’을 ‘회사 밖’에서 구하려 했을까? 그는 구글과 NASA가 후원하는 실리콘밸리 민간 창업 대학 싱귤래리티의 설립자 피터 디아만디스와 세계 최초 민간 여성 우주여행자 야누세흐 안사리와 함께 세계 최대 벤처재단 엑스프라이즈 재단(XPRIZE Foundation)을 운영 중이다. 이 재단은 인류를 이롭게 할 기술을 얻고자 공공 대회를 설계하고 개최 중이다. 작년 4월 지구에서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방법을 개발하면 1억달러(약 1380억원)를 수여하겠다는 ‘엑스프라이즈 탄소 제거’ 프로젝트를 발표하여 화제가 되었다. 포상형 공개 경쟁 방식은 일장일단이 있고 상금의 규모가 압도적이라 놀라기도 했지만, 훌륭한 인재를 많이 보유한 대기업이 아이디어를 외부에서 구..
종종 사람들은 내게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을 타고 전 세계 환경문제 현장에 다닌 이야기를 묻는다. 백번 묻기보다 한번 보는 게 낫다. 나는 구글 지도를 켜고 남아메리카 대륙을 화면 한가운데 놓는다. 흔히 ‘지구의 허파’라고 부르는 남미 대륙이 한눈에 잡힌다. 구석에 있는 위성사진 버튼을 누르면 천연색 지도가 나온다. 푸른 화면을 천천히 확대하면 대륙 한가운데에 이상한 그림이 나타난다. 세계 7대 불가사의 나스카 지상화 이야기일까? 아니다. 남미 대륙은 요즘 군인 전투복에 쓰는 디지털 무늬처럼 초록색과 갈색, 황토색 사각형으로 얼룩덜룩하다. 처음 보는 사람은 인터넷 통신 속도가 느려 픽셀이 깨졌다 추측한다. 아니다. 조금 더 확대해보자. 집과 자동차가 선명하게 보일 만큼 확대하면 알게 된다. 픽셀이 깨진 게 ..
지금부터 딱 50년 전인 1972년 3월2일, 로마클럽의 유명한 가 발표되었다. 이 책은 세계적 반향을 불러왔고 환경 문헌의 고전으로 자리매김되었다. 그런데 ‘고전’이라는 칭호는 마치 이나 이 그렇듯이, 실은 사람들이 읽지는 않고 인용하고 비판하는 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마르크스는 에서 자본주의의 종말이나 자본가 타도를 주장한 게 아니라 자본의 본성을 고찰했다. 역시 성장 자체의 끝을 말한 게 아니지만 사람들은 쉬이 오해하고 단순한 종말론의 하나로 여긴다. 이런 오해는 특히 한국에서는 제목 번역 탓도 있었을 것 같다. 엄밀하게 보자면 영어 제목(Limits to Growth)은 성장의(of) 한계가 아니라 성장에 관한 또는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한계들이다. 이 책의 내용 역시 자원이 고갈되거나 식량 ..
쓰레기 줄이는 제로웨이스트 가게를 운영하다 보면, 내가 지금 가게를 하는지 고물상을 하는지 민원실에서 일하는지 헷갈릴 때가 온다. 우리 가게는 땅값이 제법 비싼 홍대와 서울역 근처에 있는데 공간이 부족해 더 이상 새 상품을 들이지 못하는 처지에도 이 ‘쓰레기 공간’만은 침범하지 않는다. ‘쓰레기 공간’이란 따로 모으지 않는 한 재활용이 안 되는 쓰레기를 쌓아두는 곳이다. 고장 나거나 사용 후 쓰임을 다하면 종량제봉투에 버리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원래 버려지는 물건도 재활용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재활용하면 실리콘 도마는 전자제품 부품이, 커피 찌꺼기는 커피 화분이 된다. 양파망은 농촌에 돌아가 다시 양파망이, 유선 이어폰과 멀티탭은 구리가, 프린터 토너는 잉크를 채워 다시 토너가 되는 식이다. 이들만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