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살면 사람이 참 유능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자동차는 신발이 된 지 오래고 대중교통도 때론 막힐 뿐이지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스마트폰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고 하루이틀이면 원하는 것이 배달되는 환경에서 재난은 영화에서나 스릴을 높여줄 장치에 불과했다. 더위나 추위가 좀 별스러웠지만 에어컨과 난방시설로 쾌적함을 더해줄 뿐이었다. 특히나 사계절로 단련된 나라에 살다보니 100년 만의 폭염, 1000년 만의 폭우는 해외토픽쯤으로 지나쳤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지구 차원의 변화라 누구도 비켜날 수 없다는 걸 여실히 체감하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사는 동네가 80년 만의 폭우로 완전히 마비되었다. 그날 하필이면 서울 강남역 근처에 모임이 있어 뉴스에 나오는 장면들을 목격하였고, 평소 시간의 10배쯤..
도시에 살면 사람이 참 유능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자동차는 신발이 된 지 오래고 대중교통도 때론 막힐 뿐이지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스마트폰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고 하루이틀이면 원하는 것이 배달되는 환경에서 재난은 영화에서나 스릴을 높여줄 장치에 불과했다. 더위나 추위가 좀 별스러웠지만 에어컨과 난방시설로 쾌적함을 더해줄 뿐이었다. 특히나 사계절로 단련된 나라에 살다보니 100년 만의 폭염, 1000년 만의 폭우는 해외토픽쯤으로 지나쳤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지구 차원의 변화라 누구도 비켜날 수 없다는 걸 여실히 체감하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사는 동네가 80년 만의 폭우로 완전히 마비되었다. 그날 하필이면 서울 강남역 근처에 모임이 있어 뉴스에 나오는 장면들을 목격하였고, 평소 시간의 10배쯤..
그린피스 환경감시선 아틱 선라이즈호를 타고 2018년 남극에 다녀왔다. 거친 파도로 악명 높은 드레이크 해협은 ‘천로역정’처럼 괴로웠지만, 일주일쯤 견디며 항해한 끝에 만난 남극은 상상 속 천국처럼 아름다웠다. 사방 맑은 하늘 아래 새하얀 빙산이 두둥실 떠다니고, 저만치 앞에서 펭귄과 고래, 물범이 노닐었다. 낭만적인 첫 장면이 전부는 아니었다. 남극은 금세 얼굴을 바꿔 강풍 블리자드를 뿜었고, 바다에는 크릴을 낚는 대형 어선들이 검은 연기를 뿜으며 진을 치고 있었다. 크릴을 어선에 빼앗긴 펭귄과 고래는 힘겹게 먹이를 찾아 헤매야 했다. 두 얼굴의 남극이었다. 그 남극을 서울 한복판 도심 쇼핑몰에 옮겨왔다. 그린피스 남극 사진전이 지난달 14일부터 31일까지 용산역 아이파크몰에서 열렸다. 콘크리트와 인공..
지난 6월24일 열린 2040년 서울 도시기본계획 공청회 현장의 일이다. 도시계획 발표는 곧 개발 호재에 대한 관심이 된다. 부동산 분석가들은 관련 글을 쏟아내고 대부분의 언론도 이를 받아쓰기 바쁘다. 공청회에 참석하는 이들 다수의 관심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날의 분위기는 좀 달랐고 그래야 했다. 서울연구원이 마련한 초안은 대놓고 기후위기를 외면했고 이에 대한 중요한 문제 제기들이 있었다. 초안의 핵심은 ‘시민 삶의 질 개선’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양대 축으로 하여 미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도시다. 이를 위한 6개 공간으로 보행 일상권 조성, 수변 중심 공간 재편, 미래성장 거점으로 중심지 혁신, 다양한 도시 모습을 위한 도시계획 대전환, 철도 지하화 등 기반시설 ..
당신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목록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바람난 애인의 뒤통수 치던 행동, 블록체인 열풍, 재개발을 앞둔 아파트 단지 등이 있지 않을까. 나는 그 목록에 제지회사 주식도 추가하고 싶다. 온라인 배달 사업이 쭉쭉 성장한 덕에 택배상자와 종이 포장재 시장 역시 조용하고도 건실하게 떴다. 쓰레기 ‘덕후’인 나는 주택가의 재활용 분리수거가 얼마나 엉망인지 잘 알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분리배출이랍시고 검정 비닐봉지에 죽은 고양이, 똥 묻은 기저귀 등을 몰래 버린다. 그런데 주택가 재활용 분리배출 중 유일하게 아파트보다 나은 품목이 딱 하나 있다. 바로 폐지다. 폐지 줍는 어르신들은 택배상자에 붙은 테이프를 면도칼로 뜯어내 상자는 상자끼리, 책은 책끼리, 복사지는..
누워서 책 읽다 스르륵 잠드는 맛, 주말의 일과다. 너무 빨리 잠들어 책이 얼굴에 떨어지곤 했는데, 이 책은 읽다가 벌떡 일어나고야 말았다. 2016년 말에 ‘미식가의 성서’라고 불리는 미쉐린 가이드가 한국 식당을 대상으로도 평가를 한다는 소식에 요식업계가 술렁였다. 특급호텔 레스토랑, 정상급 셰프들이 운영하는 고급 식당들이 결과를 기다리던 중, 놀라운 내용이 발표됐다. 총 24곳 중 마포구 서교동, 변변한 상가조차 없던 골목에 자리 잡은 작은 중식당, 게다가 개업한 지 2년도 안 된 신생 가게가 별 다섯개 호텔 중식당과 나란히 별을 받았다. 이곳이 바로 미쉐린으로부터 “합리적인 가격에 다양하고 수준 높은 중식을 제공하는 중식 전문점”이란 평가를 받은 ‘진진’이다. 주말 낮잠을 떨쳐내게 한 책 는 허름한..
앞을 보면 ‘기후위기’라고 난리인데, 옆을 보면 석유제품을 빛나게 광고한다. 새 내연 자동차가 굉음을 내며 달리는 영상이나 석유를 사는 만큼 나무를 심는다는 주유소 홍보물이 눈길을 잡아끈다. 광고는 얼른 비행기를 타고 떠나라 유혹하고, 매끄러운 플라스틱 제품을 구입하라며 소비자 가슴을 들쑤신다. 찬물과 더운물 사이에서 시민들은 혼란스럽다. 뉴스는 기후위기 소식으로 난리인데, 광고 속 세상은 마냥 아름답다. 얼른 내연차를 타고 숲속을 달리란다. 이건 담배가 해롭다는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담배를 권하는 상업광고가 나오는 꼴이다. 굴뚝 없는 광고·홍보업도 온실가스를 유발할까? 내 생각은 ‘그렇다’이다. 광고·홍보업계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소비하라고 보챈다. 화려한 영상과 소리로 기후위기를 까마득히 잊게 하고,..
우리나라에는 특별한 자연자산으로 불교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사찰림이 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시대에 이미 경주에 사찰림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사찰림은 통일신라시대 선종의 도입과 고려시대 도선 스님의 영향으로 산지 가람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오늘날 이름난 사찰들이 경치가 아름다운 산속에 자리잡게 된 것은 이와 같은 역사적인 배경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국토 면적의 약 0.7%, 전체 산림 면적의 1.4%에 해당하는 사찰림이 있다. 사찰림은 542개 사찰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사찰당 그 면적이 평균 166㏊에 달한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과 같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중요한 사찰 주변에 이처럼 넓은 사찰림이 보전된 것은 삼국시대 이후 전승되어온 숲을 보전하는 불가의 수행방법 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