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사람들이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 건 아이 키우기가 힘들어서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일단 돈이 많이 든다. 2013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한 명의 아이를 만 17세까지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2억3000만원, 대학 졸업 때까지 뒷바라지하는 데 드는 총 양육비는 3억900만원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소득이나 지역차를 고려하지 않고 산출한 결과라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양육비 총액이 큰 액수로 다가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6년 1월 기준으로 전국 아파트 매매가 평균이 3억400만원으로 집계됐다. 아이 한 명을 낳아 키우고 교육하는 데 드는 비용이 집 한 채 가격에 육박한다는 얘기다. 실제 상담실에서 듣는 얘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가 않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 양육비 부담으로 허리가 휠 지경이란 말을 한다.

돈만의 문제는 아니다. 부모가 양육에 들인 시간과 에너지는 저 수치에 잡히지도 않는다. 부모의 세심한 돌봄이 없으면 살아갈 수조차 없는 게 아이들이다. 부모의 시간과 에너지의 상당 부분이 아이의 필요를 위해 소모된다. 아이가 어릴 때는 어린 대로, 사춘기와 청년기에 접어들어서는 그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다. 자식은 이가 자라 가려울 때마다 부모의 뼈에 대고 이를 가는 존재들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자식은 말 그대로 부모의 돈과 시간, 건강을 갉아먹으면서 자란다.

그런다고 부모가 아이의 밝은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커서 꼭 잘되란 법도, 부모에게 잘하란 법도 없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수십 년 내에 자동화가 진전되면 현재 존재하는 직업의 47%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 바 있다. 어쩌면 지금의 아이들은 어린 시절 자신이 써낸 장래희망이 빠르게 사라져가는 걸 목격하는 세대가 될 수도 있다. 그만큼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부모가 된다는 건 수익을 가늠할 수 없는 고위험 투자에 발을 들이는 것과 비슷하다. 아이가 없다면 양육에 소모될 비용과 에너지를 고스란히 자신의 발전과 여가, 노후 대비에 투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육아는 자칫 잘못하면 자신과 후속세대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투기 내지는 일생일대의 소비로 전락할 우려가 분명히 있다.

장래 출생아 수 추계&생산가능인구&인구증가율&저복지·저출산율의 악순환 구조_경향DB

미국의 사회학자 비비아나 젤라이저는 오늘날의 아이들을 가리켜 ‘경제적으로는 가치가 없지만 정서적으로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고 말한 바 있다. 큰 쓸모는 없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욱더 아이의 정서적 가치가 강조된다는 말이었다. 부모라면 누구나 고단한 일상을 살다가도 아이 덕에 한 줄기 빛 같은 기쁨을 맛보곤 한다. 아이가 부모를 알아보고 방긋방긋 웃는 모습을 보일 때면 부모의 마음은 더없이 환해진다. 아이가 혼자 뒤집기만 해도 기특하기 그지없다. 한두 발 혼자 걷기라도 하면 그간의 수고를 모두 보상받은 듯 부모는 경이로운 감정에 휩싸인다. 말을 배우는 과정은 또 어떤가. 기적이 따로 없다. 물론 이는 부모로서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들이다. 하지만 이런 정서적 반응은 결과를 알 수 없는 육아를 현재 시점에서 정당화하기 위한 방어기제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젤라이저 박사가 지적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주체라면, 청년들에게 왜 아이를 갖지 않느냐고 묻는 것보다 왜 아이를 갖느냐고 묻는 게 더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가짐으로써 포기해야 하는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갖기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대개 반대로 묻는다. 왜 청년들은 결혼하지 않느냐고, 왜 출산을 포기하냐고, 왜 아이를 더 낳지 않느냐고 채근한다. 질문을 뒤집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청년들과 여성,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 왔냐고, 출산은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한 일이냐고, 태어날 아이 자신을 위해서도 과연 좋은 일이냐고 신중하게 되물어야 한다.

“낳아놓으면 알아서 큰다”는 말은 무책임하다. 크리스틴 오버롤 교수는 <우리는 왜 아이를 갖는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 부모가 된다는 것은 곧 그가 하나의 아이를 창조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재창조하는 일이다. 생물학적 부모가 된다는 것은 곧 새로운 관계를 하나 탄생시키는 것이다. 유전적 관계만이 아니라 심리적, 육체적, 지적, 도덕적 관계까지 탄생시킨다.”

아이를 갖는 건 이처럼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관계를 재창조하는 가치 있고도 혁신적인 일이다. 우리 사회는 진정 이런 수준 높은 창조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이와 부모가 함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있는 환경인가. 이에 대한 대답을 어물쩍 젊은 세대에게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


김성찬 |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