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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금속노동조합 총파업 결의대회를 앞둔 20일 경남 거제 대우해양조선소 내 1도크에서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농성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파업에 ‘옥쇄(玉碎)’란 말이 곧잘 붙는다. 그러면 사생결단 기운이 더해진다. 이 말은 중국 남북조시대 역사서 <북제서>에 나온 ‘대장부 영가옥쇄 하능와전(大丈夫 寧可玉碎 何能瓦全)’에서 비롯됐다. 장부가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질지언정 하찮은 기와가 돼 목숨을 부지하랴는 글귀다. 쇄자를 걸어잠근다는 ‘쇄(鎖)자’로 잘못 아는 이도 본다. 글자 그대로의 옥쇄는 대의를 위해 한 몸을 던지는 걸 뜻한다.

옥쇄파업은 2009년 1월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과 그해 5월의 쌍용차 평택공장이 먼저 떠오른다. 철거민·경찰 6명이 불에 타 숨진 용산참사와 노동자 450여명이 77일간 정리해고에 저항한 쌍용차 사태가 일어난 곳이다. 두 농성장에선 최루탄·물대포·헬기를 앞세운 공권력의 토끼몰이식 작전이 벌어졌다. 희망버스는 2011년 해고노동자 김진숙씨가 309일간 대형 크레인에 오른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시작됐다. 2014년 희망버스는 아산 유성기업으로 이어졌고, 8년 뒤 거제에서 재연될 판이다. 지금 대우조선해양 독엔 하청노동자가 가로·세로·높이 1m의 ‘철제감옥’에 29일째 들어가 있고, 15m 구조물 위에서 6명이 농성 중이다. 예나 지금이나 옥쇄파업의 풍경은 같다. 주먹밥과 인화물질이 가득하고, 경찰이 에워싸고, 지지·반대 시위가 줄잇는다.

사상자가 나온 노동분쟁은 1979년 신민당사에서도 일어났다. 농성 중인 YH무역 노동자들을 경찰이 끌어낸 것이다. 1985년엔 구로공단 동맹파업도 벌어졌다. 1990년 울산 현대중공업에선 51명이 ‘골리앗 크레인’에 13일간 올라 국제뉴스가 됐다. 이후 공장 크레인·포클레인 농성에, 해고노동자가 도시 철탑·굴뚝에 오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옥쇄파업 현장도 더 높고 위험해지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노동계에선 ‘옥쇄’란 말을 쓰지 말자고 한다. 던질 게 몸밖에 없는 현실이 슬퍼서다. 용산참사는 “여기 사람이 있다”는 말을 남겼다. 그날 쌍용차 공장엔 “함께 살자”, 오늘 거제 공장엔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구호가 울린다. 조선업 불황에 깎인 임금 30%를 복원해달라던 하청노동자들은 10%까지 요구액을 낮췄다. 파업을 부수지만 말고, 절박한 목소리를 듣고 풀어주는 나라가 돼야 한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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