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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제 국가에서 차기 대통령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우리나라처럼 대권주자 지지율을 거의 매일 발표하고 그것이 뭇사람들에 의해 회자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이런 현상은 분명히 정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자체가 하나의 현실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에 박근혜 당시 의원은 차기 대통령 지지도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했지만 2011년 말부터는 안철수 의원이 그 자리를 위협하곤 했다. 박근혜 당시 의원의 높은 지지도는 이명박 대통령의 위상을 위협했지만 동시에 정권이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에 여권 차기 주자로 가장 근접해 있는 사람은 물론 김무성 대표이다. 김 대표는 청와대의 의중이 담겨 있던 서청원 의원을 누르고 당 대표로 선출됐는데, 요즘 상황을 보면 현직 대통령과의 사이가 나쁜 여당 대표의 한계를 보는 듯하다. 전두환 대통령의 지지를 받았던 노태우 민정당 대표와 같은 지위도 아니고, 임기 말의 김영삼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와 같은 모습도 아닌 것이 김 대표의 요즘 사정이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 당 대표 경선, 원내대표 선출 등에서 친박 후보가 줄줄이 고배를 마시자 박근혜 대통령의 영향력이 전과 같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 김 대표의 판단 착오였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안대희 전 대법관을 향한 험지출마론이 당사자들에 의해서 무시되는 데서 보듯이 김무성 대표의 리더십은 붕괴 직전에 와 있다.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김 대표가 총선 과정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총선 후에는 더욱 그러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김종인 박사를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고 자신은 대표직을 사퇴하고 전권을 선대위원회에 이양하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런 극약 처방에 힘입어 더불어민주당과 문 대표의 지지도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같은 지지도 상승은 고정지지층의 결집이란 측면이 강하다고 보아야 한다. 문재인 대표는 자신이 대표가 된 후에 치른 재·보선에서 패배하자 김상곤 전 교육감을 초빙해서 혁신위원회를 만들었다. 당내 문제를 정치적 대화로서 해결하기보다는 외부인사가 주도하는 위원회가 만든 제도로서 해결토록 한 셈인데, 결국에는 혁신위원회가 마련한 혁신안이 당내 갈등을 증폭시켜서 비주류 의원들의 탈당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용섭 전의원이 문재인 대표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 배석한 가운데 복당을 선언했다._경향DB


문 대표가 김종인 박사를 영입해서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 역시 앞서의 과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극약 처방이 성공할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문재인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100만표 차이로 석패한 정치적 자산을 갖고 있지만 그 자산을 지난 1년 동안 많이 소진해 버렸다. 이유야 어찌 됐든 자신이 당 대표로 있을 때 당의 분열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에 문 대표의 리더십은 큰 손상을 입은 셈이다. 어떠한 이유로도 지난 1년 동안 당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선주자로서의 문 대표의 입지는 위축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국민의당 창당을 추진하는 안철수 의원은 탈당 후에 지지도가 상승세를 보였으나 한상진 창준위 위원장의 불필요한 발언, 추가 탈당 및 외부인사 영입의 부진으로 동력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창당준비대회를 치르고 나서 지지도가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안철수 의원의 입지가 좁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영국 자유민주당의 경우에서 보듯이 소선거구제하에서 제3당이 성공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호남이란 지역지반을 갖고 있으면 새로운 정당이 성공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관건은 새로운 정당을 만들 수 있는 인적 기반이 얼마나 있느냐인데, 국민의당은 이 점에서 심각한 난관에 처해 있다. 안철수 의원이 여전히 대선주자로서 남을 수 있느냐는 국민의당이 총선에서 얼마나 선전하느냐에 달려 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국민의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중적 인지도와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을 당 대표로 영입해서 총선을 치러야 하는데,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국민의당과 안철수 의원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 정치는 한 달 앞을 내다보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보면 김무성·문재인·안철수 세 사람이 총선 후에 대선주자로서의 위치를 여전히 유지할 수 있을지가 의심스럽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2016년 정치게임에서 진정한 승자는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시중의 루머에 머물던 개헌론이 힘을 얻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에 있어 일대 비극이 되고 말 것이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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