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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까지는 안 의원에 대한 지지도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서 신당 창당은 일단 동력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추진하는 신당이 전국 정당으로 성공할지 또는 지역에 기반을 둔 제3당으로 자리매김을 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새 정당이 성공하기 위해선 명분이 있어야 하며, 명분에 부합하는 인물들이 참여해야 하지만 안 의원은 이 부분에 대해 아직은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새로 태어날 정당이 가야 할 길을 ‘중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중도’는 결과가 될 수는 있어도 명분이 되기는 어렵다. 중도 노선을 지향해야 국가를 올바르게 이끌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예로 드는 지도자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와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 그리고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다. 이들은 당시의 상황과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한 지도자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동독 출신인 메르켈 총리는 원래는 대처주의자였지만 비례대표제에 충실한 선거제도 덕분에 연정(聯政)을 해야만 했고, 그런 과정에서 전임 슈뢰더 총리가 만들어 놓은 사회적 대타협을 수용해서 정국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

블레어 전 총리는 강성노조와 보조를 같이해 유권자로부터 버림받았던 노동당을 ‘제3의 길’을 내걸고 쇄신해서 집권하는 데 성공했다. 블레어는 유권자들이 교조적 진보정책을 원치 않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마거릿 대처가 이끌던 보수당 정권은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영국의 고질병이던 방만한 공공부문과 낙후된 산업구조를 확 바꾸어 놓았는데, 블레어는 보수당 정권이 이룩한 구조개혁의 토대 위에서 보다 따듯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해서 집권에 성공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경우도 비슷하다. 미국은 레이건 대통령 임기 동안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겪어야만 했다. 대형 항공사가 파산하고 자동차 산업이 위기에 몰리는 등 상황은 심각했지만 고(高)이자 정책과 구조개혁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클린턴은 공화당 정권이 12년 동안 이룩한 구조조정과 이들이 시작한 세계화를 수용하면서도 환경과 노동의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집권하는 데 성공했다.

클린턴, 블레어 그리고 메르켈의 경우를 보면 이들은 모두 전임 정권이 힘들게 이룩해 놓은 정책을 이어받아 한 걸음 더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중도적 지도자라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을 자기가 속한 정당에 접합시킬 수 있어서 성공한 것이다. 클린턴과 블레어 정권의 경우에는 이들 집권 시에 지나치게 비대해진 금융업이 결국에는 2008년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는 데 대해 반성할 점도 적지 않다.


문재인 대표와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_경향DB


미국, 영국, 독일의 경우를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우리는 이들 나라와 사정이 다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계승할 점이 별로 없음을 알아야 한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이끄는 대한민국이 노무현 대통령이 이끌던 나라와 다르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이끌던 나라와도 다를 것임을 강조해서 집권하는 데 성공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 출마선언문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달성하고 깨끗하고 투명한 정부를 만들겠다고 했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국민대통합을 이루고 검찰개혁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 모든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렸다. 박 대통령은 의원 시절에 누구보다 재정건전성을 강조했지만 집권 3년 만에 대한민국은 ‘부채 공화국’이 되고 말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거대한 후퇴를 기록한 세월이기도 하다. 차기 정부는 두 정권이 남겨 놓은 엄청난 난제를 극복해야 하는 운명을 안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야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야 하는 데, 현실은 정반대다. 새정치연합은 내부 갈등 때문에 도무지 정권을 창출할 수 있는 세력으로 보이지가 않는다. 여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야당에 마음을 주지 못하는 것은 야당의 정책이 경직적인 데도 있지만 세월호특별법 협상에서 보듯 툭하면 강경론을 내세우는 행태 때문이기도 하다. 대통령은 상식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야당은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요즘 사정이니,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요구는 어느 때보다 크다. 안철수 의원이 추진하는 신당이 성공하기 위해선 이런 여망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단순하게 ‘중도’를 지향해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10년 동안 두 정권이 저지른 적폐를 청산하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광범한 개혁을 수행해서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정치세력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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