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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분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 그리고 ‘민주당의 집권을 위한 모임’(민집모) 등 비주류 의원들과 문재인 대표 측 주류 의원들이 벌이는 싸움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었다. 사정이 이렇다면 어떤 미봉책으로도 수습할 수 없고, 그런다고 해도 실망해버린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려놓기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구실을 주어 안 전 대표를 당내에 묶어 놓는다 한들 무슨 소득이 있을지 알 수 없다. 야권 분열이 우려된다면서 안 전 대표에 대해 탈당만은 하지 말라고 압박하는 것도 정직하지 못한 일이다.

안 전 대표가 갖고 있는 선택지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첫째로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은 자신의 정치적 실험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무대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그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되면 서글픈 일이겠지만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니다. 2007년 대선에 출마했던 기업인 출신 문국현씨가 바로 그런 과정을 밟았다. 둘째 방법은 안 전 대표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이 그토록 희구했던 ‘새 정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셋째는 새정치연합에 주저앉아서 훗날을 기약하는 것인데, 누가 생각해도 이는 우스운 일이다.

2011년 가을에 혜성과 같이 정치권에 등장한 안 전 대표는 기성 정치권 인사들과는 거리를 두고 주로 교수들과 행로를 같이했다. 많은 국민들은 안 전 대표뿐 아니라 그의 주변에 있었던 학자들을 보고 희망을 가졌었다. 당시 안 전 대표 주변에 포진했던 교수들은 역대 어느 대선 후보 캠프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참신성과 열정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안 전 대표는 정치 현실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그는 최근에 어떤 북콘서트에 게스트로 초청돼서 “이제야 정치권 바닥을 알 것 같다”는 뼈있는 농담을 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그는 ‘바닥’을 알자마자 이제 그 ‘바닥’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한 셈이다.

2013.1.3 문문재인 대선후보가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안철수 전 후보와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_연합뉴스

하지만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안 전 대표는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새 정치’를 다시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새정치연합 비주류 의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비주류 의원들도 각자가 생각하는 바가 다르지만 상당수는 탈당도 불사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이 같은 비주류 의원, 그리고 이미 탈당해서 새로운 정당을 발족시키려는 세력과 연합해서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아직도 안 전 대표는 기성 정치인과는 차별화된 무엇을 갖고 있기에 이러한 실험은 해볼 만하다. 김종필 전 총리가 오래전에 말했듯이, 정치는 원래 ‘이상 반, 현실 반’이 아니던가.


2012년 한 해 동안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서 오늘날의 이런 정권을 만드는 데 일조를 한 탓에 심한 자괴심을 갖고 있는 필자는 새정치연합이 기존의 야권 지지자뿐 아니라 2012년에 1번을 찍었던 유권자의 상당 부분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이 외연을 확장시키기는커녕 내부 분열로 인해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으니 무어라고 할 말이 없다. 사정이 이렇게 되었다면 더 이상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새정치연합은 문재인 대표 체제로 굴러가는 것으로 인정하고 도저히 같이 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의원들은 안 전 대표 등과 새 정당을 만드는 것이 전체 야권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총선을 앞두고 야권이 분열하면 여당에 어부지리를 줄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이런 상태에서 억지로 단일대오를 만들어서 총선에 임한다고 해서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지도 않다. 무엇보다 단일대오 자체가 만들어질 것 같지 않다. 야권이 분열된다고 해서 야권이 총선에서 반드시 참패한다는 법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1987년 대선에서 승리한 민정당은 다음해 총선에서도 야권 분열로 승리할 줄 알았지만 그 결과는 참패였다. 수도권 유권자들은 인물 위주로 투표를 해서 민정당에 고배를 안겨 주었다.

각종 여론조사가 우리 국민의 50%가 무당파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중요하다. 내년 총선은 이 같은 무당파 유권자들을 누가 유인하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그렇다면 새정치연합이 갖고 있는 20%대 지지도를 두고 싸우기보다는 차라리 각자의 길을 가면서 ‘무당파 50%’를 가져오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게 낫다. 소선거구제하에서 야권이 분열되면 선거 결과가 왜곡될 수도 있지만 그런 위험을 각오하고 복수의 야당이 존재하는 것이 오만한 정권을 견제하고 더 나아가 향후 정국의 큰 그림을 위해서도 나아 보인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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