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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의 첫 번째 공식은 피해자의 욕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보이스 피싱처럼 불안감으로 이성을 마비시키는 사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기는 피해자의 욕심을 이용한다. 사기꾼들의 속임수란 것은 실상 제비가 물어온 박씨에서 고대광실 기와집이 나온다는 것만큼 허무맹랑하다. 맨정신으로 들으면 누구나 말도 안 되는 사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배운 논리와 이성을 조금만 사용하면 손쉽게 물리칠 수 있다.”

“선의는 자신이 베풀어야 하는 것이지 타인에게 바라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기도 마찬가지다. 사기꾼은 없는 사람, 약한 사람, 힘든 사람, 타인의 선의를 근거 없이 믿는 사람들을 노린다. 이것이 사기의 두 번째 공식이다. 그러니 설마 자기같이 어려운 사람을 등쳐먹겠느냐고 안심하지 마시라!”

“어설프게 아는 것은 사기당하는 지름길이다. 사기의 세 번째 공식이다. 나름대로 알아보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주변의 지인이나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정보는 없느니만 못하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대신해주는 것은 없다. 대신해주겠다는 사람은 대개 브로커다. 뭐든 새로운 일을 하려면 그곳에서 직접 6개월 이상 일해보고 나서 결정해야 한다. 그게 싫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낫다.”

‘생활형 검사’를 자처하는 김웅이 <검사내전>(부키)에서 밝힌 사기의 공식들입니다. 2분에 1건씩, 한 해 24만 건의 사기 사건이 발생하는 이유는 위험보다 수익이 높다고 판단되는, 즉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랍니다. 사기꾼은 어지간해서 죗값을 받지 않기에 우리나라 사기범의 재범률은 77%에 이르며, 사기범의 55%는 5개 이상의 전과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민낯에 얼굴을 붉히며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김민섭의 추천 때문이었습니다. 망해가고 있는 대학의 밑바닥 생활을 정리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은행나무)를 펴낸 후 대학에서 내쫓긴 그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바라본 사회의 밑바닥을 정리한 <대리사회>(와이즈베리)를 내놓았습니다. 이후 저는 그의 책과 그가 추천하는 책은 무조건 읽어보기 시작했습니다. <힐빌리의 노래>(흐름출판)를 읽고는 칼럼을 썼고, <아무튼, 망원동>(제철소)을 읽고는 여러 차례 추천했습니다.

제가 발행하는 <기획회의>에 인터뷰 기사를 연재하던 그는 작년 10월에 김동식 작가를 소개했습니다. 저는 그가 전해준 김동식 소설 20여 편을 읽어보았습니다. 묘사도 없고 구체적인 서술도 없지만 묘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에서 문학의 죽음을 이야기한 이후로 큰 이야기든 작은 이야기든 모두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야기 동산에 불이 나서 모든 이야기가 새카맣게 타버린 이후에 다시 이야기의 싹이 하나둘 튀어나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책을 내보자고 했습니다. 대신 한 권이 아닌 세 권을 펴내자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책의 편집은 전적으로 그에게 맡겼습니다. 그는 디스토피아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들인 <회색 인간>, 요괴와 외계인과 악마가 등장하는 우화를 모은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현실세계의 스릴러물로 구성한 <13일의 김남우> 등 3권으로 편집했습니다.

책을 내놓으면서 큰 반응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주는 소설을 소개한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김동식 작가의 소설이 연재되고 있는 ‘오늘의유머’에서는 김민섭이 책 출간 소식을 알리자마자 ‘구매인증 릴레이’가 벌어졌습니다. 초판이 매진될 정도였습니다. 이어서 그가 페이스북에 다시 추천의 글을 올리자 이번에는 그의 지인들 중심으로 소설을 직접 구매해서 읽은 다음 호평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경향신문에 발표하는 ‘청춘직설’에서 “김민섭씨 후쿠오카 보내기 프로젝트”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서른다섯을 먹도록 해외여행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자신이 어렵게 마련한 후쿠오카행 10만원짜리 땡처리 비행기표가 환불 수수료를 제외하고 2만원밖에 돌려받지 못하게 되자 아예 같은 이름의 사람을 찾아 대신 여행을 보내준 프로젝트였습니다. 그 프로젝트로 93년생의 다른 김민섭씨가 대신 후쿠오카 여행을 다녀와 많은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처절한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바람에 죽어가고 있는 대학에서 아무도 주지 않는 떡 하나를 더 주워 먹으려고 버티고 있었다면 묻힐 뻔한 안타까운 재능을 그는 우리에게 맘껏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그처럼 현실에 부대끼며 작은 결과라도 만들어내면서 현실 사회의 어려운 벽을 넘어서려 할 때 가능성의 싹은 활짝 필 것입니다.

최근에 김민섭을 중심으로 벌어진 일들에서 우리는 그와 그가 추천한 이가 잘 되면 모두가 잘 되는 것이라는 연대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김민섭은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낮은산)에서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하고 나에게 묻는다면 저마다 가지고 있을 ‘린(隣)’이라고 답하고 싶다. 그것은 자신을 기초로 타인을 동정하는, 우리 사회를 여전히 지탱시키는 감각”이라고 했습니다. 첫째 아이의 이름을 ‘린’으로 짓기에 실패한 김민섭은 결국 둘째 아이의 이름을 ‘린’으로 지었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타인과의 연대를 날마다 고민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김민섭을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라고 평가했습니다. 수백만의 팔로워를 가진 메가 인플루언서보다 수천 명의 팔로워에 불과한 이가 확실한 ‘연결성’만 확보되면 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지요. 앞으로도 그의 맹활약을 기대해봅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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