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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으로 망가진 회사를 다니고 있는 친구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더욱 나빠졌고, 회사가 퇴행을 거듭하는 동안 친구의 일상은 확 달라졌다. 그림 그리기, 서예, 요리 등 각종 취미생활을 섭렵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라도 다른 짓을 하면서 버티지 않으면 제정신으로 회사를 다니기 힘들다며 웃는데, 그 덤덤함에 마음이 더 아팠다. 열정 넘치던 신입은 사라지고, 못 볼 꼴을 많이 본 자의 씁쓸함이 가득했다. 회사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 바로 징계다. 저항하는 자는 제거되고, 따르는 자는 이익을 얻으며, 시스템이 그 지시를 충실히 이행할 때 개인이 버티기란 쉽지 않다. 말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무력함에 순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핵심이니까.

‘블랙리스트’도 비슷하다. 다들 심증은 있되 물증이 없었을 뿐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짐작하고 있었다. 아예 명단을 만들어 배제할 사람과 지원할 사람을 지명해 하달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들은 여전하다.

이혁진의 소설 <누운 배>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린다. “사실은 사실로 판가름나지 않았다. 사실을 판가름하는 것은 힘이었다. 회장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틀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임원들이 가짜를 말해도 회장이 진짜라면 진짜가 되고 진짜를 말해도 회장이 가짜라면 가짜였다. 세상은 성기고 흐릿한 실체였다. 그것을 움켜쥔 힘만이 억세고 선명했다. 힘은 우스운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우스운 것도 우습지 않게 만드는 것이 힘이었다.” 소설의 구절을 빌린다면 ‘아무리 우스운 리스트여도 우습지 않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힘이고, 이 정부가 내세우던 ‘문화융성’이었을 것이다. 소설가 한강이 맨부커상을 탔어도 5·18을 다룬 소설을 쓴 이상 리스트에 포함될 사유가 충분해지는 식이다. 그 결과 조악하고 엉성한 수준의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졌고, 일단 한 번 만들어지자 리스트가 사실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결정할 수 있는’ 윗분의 뜻에 따라, 일은 착착 처리되었다.

문화예술인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블랙리스트 관련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증거인멸 중단 및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검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덮어쓴 후 벗어서 하늘로 날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정지윤 기자

차은택이 ‘문화계 황태자’로 수천억원의 문화예술 예산을 주무르며 ‘문화융성’의 혜택을 누리는 동안, 블랙리스트에 오른 현장 문화예술인들은 얼마 되지 않는 지원조차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받지 못했다. 문화예술지원사업의 대부분이 공적 기금, 그러니까 국고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외부 지원 자체가 끊겼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예술인들이 바로 오늘(10일), 광장극장 ‘블랙텐트’의 문을 연다. “블랙리스트와 예술검열은 연극인들에게 무대를 빼앗고 관객들에게 공론장으로서 공공극장을 빼앗았지만, 동시대 고통받는 목소리들이 사라진 공공극장을 광장에 다시 세우겠다”는 것이 이 극장의 취지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기심을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남들더러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블랙리스트와 반대로 적극 지원하거나 추천하는 이른바 ‘화이트리스트’까지 만들어 화끈하게 지원했다는 이 정권이야말로 이기심의 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블랙리스트를 만들 필요도 없이 마음대로 검열하고 탄압할 수 있었던 지난 시절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국가가 예술과 문화에 대해 어떠한 가치 판단도 해서는 안된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는 네덜란드의 문화정책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문화예술지원의 오랜 명제인 ‘팔길이 원칙’(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만 지켜져도 감사하겠다.

앞서 언급한 친구의 직장은 MBC다. 간판뉴스 시청률이 2%대로 추락하는 와중에도 ‘특검 블랙리스트 수사’에 딴지를 걸고 있는 ‘대단한’ 언론사다. “블랙리스트 운영을 언론, 사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중대 범죄로 보고 있다”는 특검의 수사에 희망을 걸다가도, 친구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광화문광장의 블랙텐트가 사라지기 전에 이 친구는 극장을 취재하러 갈 수 있을까? 문화계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꼼꼼하게 뿌려져 작동 중인 블랙리스트들을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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