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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를 연구하는 한국정치연구자로서 안타까운 것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역대 대통령들이 자신의 장점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주 좋은 예이다. 노 전 대통령은 뛰어난 소통능력 등 어느 대통령도 가지지 못한 탁월한 능력을 많이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같은 능력을 발휘하기보다는 정제되지 않은 표현 등으로 불필요한 정쟁만 불러일으킨 측면이 많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공사와 중앙차선제 도입이 보여주듯이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을 끊임없이 만나 설득하여 엄청난 잡음이 일어날 문제를 별 잡음 없이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자 이 같은 ‘소통의 정치인’ 이명박은 사라지고 불도저식 현대건설 사장 이명박만 나타나고 말았다.

박근혜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박 대통령이 가진 많은 장점 중의 하나는 품격이다. 어려서부터 대통령의 딸로서 훈련을 받아서 그런지, 박 대통령은 한국정치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품격을 갖췄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다른 것은 몰라도 한국정치의 품격은 한 단계 높여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집권 초기 윤창중 대변인 등 일련의 인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박 대통령처럼 품격을 가진 정치인이 저렇게 품격이 없고 막말을 하는 사람들을 중용할 수 있을까 충격을 받았다. 그것도 한 나라를 대변하는 대변인으로 말이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보여준 품격과 이들이 종편에 나와 뱉어냈던 정치포르노 수준의 논평의 대비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러다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박 대통령이 어려서부터 훈련을 받아 몸에 밴 절제와 품격이 무언가 격의 없이 막 지껄이고 마구 행동하고 싶은 억압된 욕망을 축적시켜 왔던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들의 정치포르노 수준의 발언을 보면서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껴 보상심리에서 이들을 중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4년 6월 19일


요즈음 박 대통령을 보고 있노라면 초등학교 친구가 떠오르며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초등학교 시절의 사지선다형 문제는 이론적으로 보자면 답을 찍기만 해도 확률적으로 4분의 1은 맞아야 한다. 그러나 그 친구는 답을 몰라 찍으면 틀린 답만 골라 찍는 특이한 ‘재주 아닌 재주’가 있어 꼴찌를 도맡아 했다. 박 대통령도 꼭 그 꼴이다. 박 대통령의 인사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에 찍어도, 찍어도 그렇게 틀린 답만 골라 찍는 것도 재주”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골라도, 골라도 그렇게 문제가 있는 사람들만 골라 선택하기도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정말 천운이 따르지 않아 그렇게 문제 있는 사람만 골라서 걸리는 것인가? 아니면 박 대통령이 중시하고 쓰고 싶은 인재풀이 원래 그렇게 문제가 많은 사람들인지? 다시 말해, 박 대통령이 좋아하는 인재들이 원래 그같이 문제가 많은 사람들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국민들은 답답하고 짜증이 나다 못해 절망감마저 든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부도덕하고 문제가 많은 사람들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절망감이다. 하긴 평소 존경하던 국민검사 안대희까지도 단지 몇 달 사이에 그처럼 엄청난 수임료를 받았다는 데는 할 말을 잃고 배신감마저 들었다. 아니 절망감과 배신감은 자책감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들이 그렇게 사는 동안 나는 위장전입 하나 못하고, 군대 다니며 요령 피워 근무시간에 대학원 다니며 석사학위 하나 못 따고, 미련하게 뭐하고 살았나 하는 자책감이다.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박 대통령에게 두 가지만 건의하고 싶다. 우선 공직자 추천 시 치매검사를 꼭 해달라는 것이다. 치매환자가 아니라면 자기가 살아온 길을 뻔히 알 텐데 그 많은 문제들을 알고도 총리 등 공직을 사양하지 않고 덥석 받을 수가 있는가? 다른 하나는 “정홍원 총리를 유임시켜 주십사”하는 것이다. 어차피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할 텐데 강한 성격의 안대희, 문창극, 김문수 같은 사람들보다는 있는 듯 없는 듯 처신해온 정 총리가 적임자이고 별 흠도 없고 이미 청문회를 거쳤으니 최고의 적임자인 것 같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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