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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시립도서관 앞 공원에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했다. 대로변에 야자나무가 늘어선 LA를 가로질러 닿은 글렌데일은 조용한 도시였다. 특히 도서관 앞 공원은 한적했다. 노인 둘이 나무 그늘에 앉아 두런거렸고, 그들 뒤로 주먹을 단단히 쥔 소녀가 앞을 응시한 채 꼿꼿이 앉아 있었다. 

 글렌데일시는 2007년 7월30일 미국 하원이 만장일치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을 기념해 매년 7월30일을 ‘위안부의 날’로 지정했으며, 2013년에는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 이곳에 소녀상이 설 수 있었던 것은 위안부의 실상을 알리려는 활동가들의 노력도 주요했겠지만, 무엇보다 시민들의 지지 덕분이라고 했다. 글렌데일 시민의 40%가 넘는 아르메니아계 시민들이 과거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에 대한 기억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쉽게 공감했다(<기억 전쟁>, 임지현, 휴머니스트)는 것이다. 이곳에 와보고 싶었던 것은 아픔의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의 연대를 두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 시립도서관 1층 갤러리에선 ‘1N3 : SEXUAL VIOLENCE PANDEMIC’ 기획 전시가 열려 역사가 덮어온 여성들의 아픔을 그려낸 예술 작품들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위안부의 아픔이 아시아에 있는 작은 나라만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오랫동안 되풀이해온 폭력임을 보여주는 이 공간에서 내가 한참 동안 바라본 것은 철판에 한글로 새긴 글씨였다. 들어봐… 들어봐….

들어봐! ‘평화의 소녀상’은 그들이 과거에 존재했다는 것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지구에 사는 우리의 할머니였으며, 어머니였으며, 누이였던 그들은 우리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당신에게 평화란 무엇인가? 당신은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지구에 산다면 누구든지 그들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2017년 일본 오사카시는 샌프란시스코에 ‘위안부 피해자 기념비’가 서자 60년 동안 맺은 자매결연을 파기했다. 얼마 전 일본 나고야시에서는 전시회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중단했다.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지 않은 일본은 소녀상의 외침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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