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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겨울이 몹시 추웠다. 빨간 내복 위에 털실로 짠 바지를 껴입고 눈 쌓인 골목을 휩쓸고 다니다 보면 바지 밑단에 얼음이 엉겨 붙어 뻣뻣해졌다. 그때 골목길은 대개 흙바닥이라서 겨우내 꽝꽝 얼어붙었다가 날이 좀 풀린다 싶으면 쌓여 있던 눈과 함께 녹아 곤죽이 되곤 했다.

이제 집 밖으로 나서면 시멘트 바닥에 아스팔트가 짱짱하게 깔려 있어 실감하지 못하지만, 땅도 겨울에는 강물처럼 얼었다 녹기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보리밭은 이른 봄이면 겨우내 들뜬 겉흙을 눌러주고, 보리가 뿌리를 잘 내리도록 보리밟기를 한다. 밟아줘야 잘 자라며, 웃자라지 않도록 제때 밟아야 하는 것은 보리의 생장이다.

대학에 들어간 뒤로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번 청년은 얼마 전 꽤 좋은 학원 강사 자리를 얻었다며 좋아했다. 전에 다닌 학원보다 시급이 높은데, 수업을 하루에 한 시간밖에 하지 않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런데 다행히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그는 특강 하나를 더 맡았다고 했다. “그런데 수업 시간이 늘면 시급이 깎여요. 한 시간 이상 수업을 하면 5000원을 적게 받아요.”

나는 그의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계산법일까. 그 계산법대로라면 청년은 열심히 일할수록 노동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그는 특강을 시작하면서 특강 전 수업까지 깎인 시급으로 받았다고 했다. 그는 첫 아르바이트비를 받은 날 밤, 자신이 받은 급여가 어떻게 계산된 건지 한참 동안 계산기를 두드려봤다며 그걸 따져 물어야 할지 말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껏 접한 어른이라고 해야 부모님이거나 선생님이라서 그런지 어른 앞에 서면 자꾸 작아진다면서 웃었다.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그와 함께 나선 어둠길은 얼어붙은 듯 냉랭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며 내내 중얼댔다. 어른들은 왜 이러는 걸까? 청년들에게 우리 사회는 일할수록 불행해진다는 걸 깨우쳐주려고? 웃자라는 것을 걱정해서? 밟아줘야 잘 자라는 것은 보리뿐이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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