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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한 인터넷 매체에 필자의 민낯이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제목은 ‘시국선언 중 눈물 흘리는 서울대 교수’였다. 오십 넘은 나이에 우는 모습이 큼직하게 내걸렸으니 참으로 민망한 노릇이다. 나는 그때 왜 눈물을 흘렸던 걸까?

그날 서명 참가 교수 중 일부는 개교 이래 최대 인원인 728명이 참여한 시국선언문을 실내에서 낭독하고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후 학생들과 4·19탑으로 행진했다. 지금의 상황이 헌정유린과 국정농단으로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대통령이 하야했던 이승만 정권 말기와 여러모로 닮았기에 4·19의 의미가 여느 때보다 절실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6·10항쟁을 겪은 소위 ‘386세대’에 속하기에, 4·19탑 앞에 서니 필자가 학창 시절 경험했던 많은 죽음이, 숱한 이들의 희생이 떠올랐다. 수많은 이들의 헌신과 피와 목숨으로 이뤄낸 민주주의가 맥없이 무너져내린 게 참담했고, 제대로 지켜내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울컥했던 것이다.

그들처럼 온몸 바쳐 독재와 맞서 싸울 용기가 없었던 필자는 대학 시절 내내 회색지대에서 방황했고, 그때의 부끄러움과 부채의식은 여전히 묵직하게 남아 있다. 많은 죽음 가운데 내게 특별히 기억되는 죽음이 있다. 그것은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치열하게 함께하지 못했다 자책하며, 빚진 자신의 삶이 ‘부끄러워’ 한강에 투신한 박혜정 언니의 죽음이다. 그녀의 죽음은 김세진·이재호·이동수 등 몸을 불태워 저항하거나 박종철처럼 고문에 저항하며 죽어간 경우와 결이 달랐고, 그녀의 삶에도 미치지 못한 내겐 가슴 저린 아픔이었다. 그런 죽음들을 통해 자라난 민주주의가 무너져내렸고 “이게 나라냐”는 탄식과 자조가 전국을 뒤덮고 있다. 걸핏하면 엄정한 법질서를 외치며 약간의 의혹 제기에도 국기문란이란 말로 노기와 결기를 세웠던 청와대가 매일, 아니 시시각각, 새롭게 생산되는 기사의 진원지가 되었다. 범죄영화에서나 본 대포폰이 청와대 의사결정 과정에 등장하고, 국민으로부터 아무런 권력을 위임받지 않은 사인에게 대통령의 권한이 위임된 아연실색할 상황이 여기 이 땅에서 버젓이 펼쳐진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외압에 의해서든 자기검열에 의해서든 제대로 된 감시와 견제 기능을 내려놓았다. 프리덤하우스가 올해 발표한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33점으로, 1990년 이래 언론자유국이었던 한국은 2011년 이후 이명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6년째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2016년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180개국 중 70위로 역대 최하위였다. 언론자유지수는 김대중 정부 말인 2002년 39위로 출발해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31위로 최고를 기록한 후 이명박근혜 정부를 지나며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2016년 조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한국에 대해 ‘툭하면 화내는 대통령’이란 제목을 달았다. 비선 실세에게 기댄 채, 모든 공적인 대화 통로에는 ‘불통’과 ‘고집’으로 일관한 대통령을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정책과 에너지정책이 제대로 결정되고 집행되었을 리 만무하다. 민주적 절차를 거친다 해도 결과의 친환경성을 보장하기 어려운데 이런 상황이라면 말해 무엇할까?

합리적 근거에 기초하지 않고, 공개 토론이나 투명한 검증이 없는 정책 결정과 집행은 ‘전문가’란 외피를 두르고 곡학아세하는 지식인이 자라고 기생하는 온상이 된다. 유독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교수들의 일탈이 두드러진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대통령과 주변 인물의 사적 이해가 기준이니 공공의 이익과 미래세대의 이익이 고려될 여지는 애초에 없었다. 그간 보여준 무능과 비리, 범법이 차고도 넘치는데 그들은 ‘부끄러움’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 이제 다시 민주주의로! 그것만이 답이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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