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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야당은 갈지자걸음이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어제 “진실규명 및 책임자 처벌에 집중하고 나머지 정치적 상상과 제안은 국민주권의 원리에 따라 국민이 결정할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너무 급하게 가도 안되고, 너무 서서히 가도 안된다. 민의와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민심의 흐름을 좀 더 관망하겠다는 뜻이지만 뚜렷한 전략도 대책도 없는 무기력한 모습이다.

지난 5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차 국민행동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성일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시민들에게 버림받았다.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 그는 최근 한 달 새 두 차례 대국민사과를 했고, 한 차례 국회를 제 발로 찾아왔다. 그동안 안하무인격 1인 통치를 해왔던 것에 비하면 상상도 못했던 장면이다. 모두 언론의 끈질긴 보도와 분노한 민심이 만들어낸 성과다. 여기까지 오는 데 야당이 한 일은 뭐가 있는가. 야당은 특검, 총리 지명 철회, 국회 추천 총리란 3대 조건을 내건 바 있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사과에서 특검 수용 의사를 밝혔고, 총리 추천을 국회에 제안함으로써 총리 지명도 사실상 철회했다. 기실 이런 대응은 총리 지명이란 새로운 이슈로 지금의 위기 국면을 벗어나려는 꼼수다. 헌법에 ‘총리는 행정에 관해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새삼 총리에게 내각 통할권을 주겠다고 선심 쓰듯 한 것은 권력을 내려놓을 의사가 없다는 뜻이다. 국회가 추천하든, 대통령이 지명하든 어차피 총리는 대통령 지휘 아래 있으니 우선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심산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야 3당이 이런 제안을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거부한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시민들의 눈에는 야당의 제안을 대통령이 다 받아들였는데 마치 또 다른 조건을 요구하며 국가적 위기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 비친다는 점이다. 여권에서 “무책임 야당”이라며 일제히 공세모드로 전환한 것도 이러한 기류 변화를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상시국을 수습해야 하는 책무는 야당에도 있다. 대통령의 정상적인 통치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국회 다수 세력인 야당이라도 책임의식을 갖고 나서야 한다. 대통령의 2선 퇴진, 새누리당 탈당, 책임총리 권한 명시 등의 현안에서 정치력을 발휘해 국정공백을 조기에 수습하고 정국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행정부 마비 상황에서는 주권을 위임받은 국회가 국정을 이끌어간다는 자세도 요구된다. 주말 촛불집회에서 성난 민심이 표출된다면 ‘백기 투항’을 받아낼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수권정당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시민들의 마음이 대통령을 떠났다고 민심이 야당 품으로 들어온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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