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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친박 지도부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정국 반전을 꾀하고 있다.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를 부각하며 내부가 분열하면 난국을 헤쳐갈 수 없다고 바람잡이에 나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어제 트럼프 당선자와의 통화에서 그의 방한을 요청하며 “만나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박 대통령이 군통수권도 총리에게 넘겨야 한다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발언을 반헌법적인 발상이라고 역공했다. 새누리당은 또 간담회 등을 개최하면서 ‘트럼프 비상체제’를 내세우고 있다. 박 대통령과 친박 지도부가 트럼프 문제를 내세워 위기를 덮으려는 것이다.

한 시민이 10일 서울역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이날 통화를 했다는 뉴스채널 보도를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의 예상 밖 당선으로 한·미관계 변화에 대한 대비가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곧 퇴진 직전에 놓인 박 대통령이 통치 일선에 복귀하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박 대통령은 지금 비선 실세 최순실씨 국정농단의 몸통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씨의 축재를 소극적으로 허용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지시했다고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실토했다. 그 결과 시민의 불신임을 받고 여야가 추천하는 총리에게 국정을 맡기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그런데 이제 와서 뜻밖의 미국 대선 결과로 대외정책이 중요해졌다며 일선에 복귀하겠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억지다.

군통수권 등 외치가 오로지 대통령 몫이라는 여당의 주장도 지나치게 형식론적인 해석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박 대통령이 외치에 나서는 것이 오히려 부적절하다.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할 대로 당해 위신이 깎인 데다 통치권을 거의 잃은 박 대통령이 외교무대에 나선들 어떤 상대가 박 대통령과 진지한 대화를 하겠는가. 시민의 지지를 잃은 껍데기 대통령이 국가안보와 시민의 생명을 좌우할 외교·안보 문제를 결정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게다가 지금 불안을 초래하는 것은 외교·안보 현안만이 아니다. 경제와 민생 등 허다한 과제가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이들 현안을 외치와 내치로 분리해서 대응한다는 것은 상상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제는 김진현·박세일 등 보수계의 원로들까지 박 대통령이 리더십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문제를 앞세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다. 박 대통령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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