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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 세월호 참사로 교육부가 전국 초·중·고교의 1학기 수학여행을 전면 중지시키면서 수학여행의 존폐 논란이 뜨겁다. 수학여행을 없애자는 쪽에서는 현실적인 위험 요소가 있고, 사회·교육적인 환경이 크게 변했으며, 여행이 일상화된 시대에 수학여행의 교육적 수명이 다했다고 말한다. 반대로 수학여행 자체를 없애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으로, 체험활동 확대라는 시대적 추세에서 더욱 안전하고 교육적 효과도 높은 수학여행 개선책을 만드는 쪽으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 여행·체험학습 일상화로 교육적 수명 다해… 위험요소도 늘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했던가. 이번 세월호 참사가 그런 경우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수백명의 학생들이 진도 앞바다에서 선박 침몰로 희생됐다. 그동안 크고 작은 수학여행 사고가 있었지만 이번이 가장 큰 사고다. 비극 중의 비극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안전시스템 확인은 물론 현재 관성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수학여행 폐지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교육적 수명을 다했다는 점에서다.

첫째, 사회·교육적 환경이 크게 변했다. 오늘날에는 과거와 달리 교통수단의 발달로 여행이 일상화되었다. ‘대여행의 시대(grand tour)’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고 있다. 현재 국내 여행만 해도 매년 4000만명 정도가 여행에 나선다. 국외 여행객 수도 1500만명을 넘어섰다. 주말과 방학을 이용한 교육여행도 보편화된 지 오래다. 가족여행은 아이들을 위한 ‘교육여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행의 효과도 수학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이상이다. 이 정도면 ‘학교에서 이론적으로 공부한 내용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으며 체험한다’는 수학여행의 본질적 교육효과를 충분히 충족하고도 남는다. 과거와는 달리 사회적 인프라 시설 미비로 인한 장애가 이미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현재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체험학습만으로도 수학여행의 효과를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 학교에서는 다양한 현장 체험학습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프로그램 역시 균형 잡힌 지·덕·체 활동을 통해 인격도야를 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들이다. 바로 이런 체험활동을 통해 이미 수학여행의 교육목적을 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체험학습은 수학여행과 달리 비교적 소규모로 이루어지는 활동임을 감안할 때, 대규모 이동에 따른 학생들의 안전문제 해소와 교육적 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수학여행 유지론자들은 ‘수학여행을 통해 추억과 우정을 쌓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체험학습 활동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추억을 만들고 우정을 쌓을 수 있다.

셋째, 수학여행에 따른 현실적인 위험요소를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해질수록, 위험요소도 비례해 늘어나게 된다. 과거 농경사회와 현대사회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속에서 위험요소를 적극 통제해야 하는 개인의 책임도 커지게 된다. 사회 전반의 시스템이 정교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건 더 큰 위험으로 나타난다. 이번 수학여행 참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위험요소에 대한 선장의 통제 실패가 결과적으로 침몰이라는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이 같은 경우는 이번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수없이 발생한 수학여행 사고들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수학여행의 존폐가 거론되었던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그동안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지만 교육현장에서는 별 고민 없이 관성적으로 실시해왔다. 사실, 이쯤 되면 ‘철지난 낡은 옷을 버리지 못하고 곰팡이만 피게 하는 꼴’이 아닌가. 일부에서 주장하듯 사고가 두려워 혹은 사고가 날 가능성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번 사고는 단순히 계기를 제공했을 뿐이다. 이미 사회·경제적으로 수학여행을 폐지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지금의 수학여행은 전근대적인 ‘집체교육(集體敎育)’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교육적 수명을 다한 수학여행을 이번 기회에 폐지해야 한다.

<한병선 | 교육평론가(문학박사)>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로 탄천주차장에는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다. (출처: 경향DB)


■ 학년 단위 대규모 수학여행, 안전하고 교육적으로 개선해야

학교 현장은 제자들과 동료, 선배 교사를 잃은 비통함에 수업 등 교육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다보니 아이들은 우울증을 보이거나 눈물을 흘리는 경우까지 있어 제자들을 위로하거나 상처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제자들도 큰 충격과 상처를 입게 되어 안타까울 뿐이다. 교육부의 1학기 수학여행 전면 중단조치 전후에 교육계 안팎에서 수학여행 존폐 논란이 일고 있다. 수학여행길에 올랐던 단원고 학생들의 희생이 큰 만큼 ‘수학여행이 과연 교육적으로, 사회적으로 필요한가’에 대해 진지한 논의는 필요하다. 또 “학생 안전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 진리처럼 학생들의 학교 밖 교육활동이 점차 늘어가는 상황에서 앞으로 학생들의 안전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임도 맞다. 문제는 수학여행의 잠정 중단이 당면한 우리 사회의 잘못과 학생의 안전을 보장하는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는 데 있다. 현재 학교는 수학여행뿐만 아니라 예정되어 있던 소풍, 어린이날 행사, 창의적 체험활동도 거의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있다. 아이들은 손꼽아 기다려왔는데 “갑자기 안 하겠다”고 하니 입이 삐죽 나온 상태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잘못한 걸 왜 우리가 피해를 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선생님들은 이런저런 말로 위로도 하고 설득도 하고 있지만 교사로서 제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큰 참사에 따른 불안심리, 과거와 달리 여행이 활성화되었다는 시대변화를 감안하더라도 수학여행 자체를 없애는 것은 본질을 호도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선장 및 선원의 직업윤리 부재와 낮은 책임감, 우리 사회의 총체적 안전사고 불감증과 재난대응 시스템 부족이다. 사고 발생을 염두에 두고 수학여행이나 체험활동 자체를 아예 없애자고 하는 것은 학생들을 교실에만 둬야 한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창의성과 인성을 겸비한 미래지향적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기존의 특별활동 및 재량활동을 통합해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새롭게 도입된 교과외 교육과정이다. 중학교의 경우 체험활동(자율, 동아리, 봉사, 진로)으로 3년간 306시간을 운영하도록 되어 있다. 또 현 정부 들어 시범운영하고 있는 자유학기제에서도 진로탐색 활동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권장하고 있다. 그간 역대 정부가 학생들의 학교 밖 활동을 적극 권장하는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학교와 교사는 늘 학생 안전사고에 대한 부담과 불안감을 늘 가져왔다. 이번 참사와 같이 큰 재해나 안전사고 대응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교사 입장에서는 안전사고 매뉴얼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이제 수학여행 존폐 논란보다는 수학여행을 안전하며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관습적으로 이루어져온 학년 단위의 대규모 수학여행 방식 개선은 필요하다. 최근 교총이 256명의 초·중·고 교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학년 단위의 대규모 수학여행 폐지에 대해 64.7%가 찬성했다. 그렇다면 학급별, 주제별 소규모 수학여행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교육부도 이미 4학급 또는 150명 이하 소규모 단위의 테마형 수학여행을 권장해왔고, 일부 학교는 그렇게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수학여행의 비용 증가, 수학여행지 숙소 및 교통편 선정 등 준비과정의 어려움 및 교사 업무 증가, 다른 날짜·장소로 할 경우 학사일정 조정의 어려움, 면학 분위기 저해, 인솔교사가 적어 학생 안전사고 예방의 부담감 가중 등으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교사가 수업을 하면서 교육적 효과가 큰 장소와 숙박지 선정과 안전문제, 계약 등을 모두 책임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이는 시·도교육청이나 교육지원청이 나서 지자체와 협의해 다양한 테마여행지를 선정하고, 지자체는 안전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때 활성화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교외 교육활동을 비롯한 국가 전체의 안전대책이 범국가적 차원에서 마련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최대욱 | 한국교총 부회장(전남 장흥용산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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