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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소선거구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행 제도에 문제가 많다는 데 대해서는 모든 정치 진영이 공감한다. 하지만 이 제도를 어떤 제도로 대체할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크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대안이라는 일치된 의견을 가지고 있어 문제가 비교적 쉽게 풀리나 했더니,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정치적 계산을 하면서 한 발 빼는 듯한 모습을 보여 혼란스럽다. 지난 대선에서 모든 정당이 개헌을 하겠다고 공약해 놓고는 제대로 논의도 않고 기회를 날려 버렸는데, 이러다간 선거법 개정도 물 건너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민주당은 머뭇거릴 어떤 정당한 이유도 갖고 있지 못하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했고 그 계승자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는 지난 30년 동안 등장했던 여러 정부들과는 다른 역사적 사명을 갖고 있다. 두 보수정부를 거치면서 자칫 다시 권위주의화의 나락으로 떨어질 뻔했던 우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손봐서 좀 더 성숙하고 정의로운 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어내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적폐청산도 좋고 한반도 평화체제도 더없이 소중한 성취이지만, 그 모두는 결국 우리 민주주의의 심화라는 과제로 이어져야 한다. 선거제도의 개혁이야말로 그 과제를 완수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이 일은 어쩌면 개헌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정치적 대표자를 선출할 때 모든 유권자들의 의사가 공평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는 가장 기본적인 ‘민주주의적 정의’의 문제다. 승자독식의 원리에 따르는 현행 소선거구제는 표의 등가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낙선자를 지지한 많은 유권자들의 정치적 의사를 그냥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는 불의한 제도다.

게다가 이 제도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지역주의라는 망국적인 정치적 병리를 낳은 주범이다. 사표(死票)가 없도록 하고 유권자들의 지지 정도와 국회 내 정당들의 의석 수를 최대한 일치하도록 하여 그러한 불의를 교정하고 병리를 치유해야 한다.

물론 민주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합의를 해도 장애물이 많다. 자유한국당의 반대부터 넘어서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이 제도에서 소수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서인지 중대선거구제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 이 제도는 국회의원 정족수 300명을 그대로 두고서는 도입하기 쉽지 않은데, 여론은 의원 수 확대에 대해서는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 제도가 대통령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문제제기도 있다. 선거제도 개혁, 과연 가능할까?

우리 사회는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 6호기 건설 재개 여부 문제 같은 첨예한 갈등 사안을 이른바 ‘시민참여단’을 통한 공론화 과정으로 해결해본 경험이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집단의 표본적 대표 시민들을 추첨의 방식으로 선발하여 공정하고 심도 있는 숙의를 하게 하여 문제를 해결하자는 ‘시민배심(원)제’의 한국적 버전인데, 사실 선거제도 개혁이야말로 이런 방식에 가장 적합한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정당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결국 당리당략부터 앞세우기 마련인지라, 직접 이해당사자가 아닌 시민배심원들이 가장 공정하게 우리 정치공동체 전체를 위해 제일 좋은 안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진행된 공론화 과정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그런 문제해결 방식을 정부가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용했다는 문제제기는 급소를 찌른다. 또 그 과정이 원자력 발전 문제는 어쨌든 비교적 수긍할 만하게 풀었지만, 대입제도와 관련해서는 시민참여단에 선택지들을 제시하며 해답을 요구한 사안이 적절한 공론화 대상이 아니었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그런 비판들은 시민배심을 통한 문제해결 방식의 민주적 정당성과 합리성 그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라기보다는 보완할 지점들에 대한 지적이라고 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의 중대선거구제를 포함하여 각 정당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안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그 안들을 중심으로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 된다. 그러면 정치적 책임성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적절성에 대한 시비도 생기지 않게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번에는 공론화 과정을 좀 더 합리적으로 만들 수 있는 비교적 충분한 시간적 여유도 있다.

시민참여단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택할지, 그런다고 해도 어떤 비율로 그렇게 할지, 아니면 아예 다른 제도를 선택할지, 의원정족수 확대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남은 문제는 그에 따른 최종적인 정치적 결정을 어떻게 내릴지에 대한 정치권의 최소 합의뿐이다.

<장은주 | 와이즈유(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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