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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23일 차관회의를 열어 공무원 5급 공채(옛 행정고시) 선발규모를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축소해 2017년까지 50%로 줄이고, 50%는 민간경력자를 채용하기로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민관 유착 등 이른바 ‘관피아(관료+마피아)’로 대변되는 공직사회의 문제가 대두되면서 나온 조치다. 획일적인 공무원 선발 방식을 개선하고 공무원의 직무능력과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제도 개선의 취지대로 공직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공채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과 고시 축소가 ‘관피아’ 문제의 해법이 될 수는 없다는 의견이 공존한다. 서로 다른 시각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 암기 위주 필기시험 공직수행능력 제대로 판별 못해

최근의 안타까운 사고로 행정고시제도가 존폐의 도마에 올라 있다. 정부는 5급 공무원 선발을 ‘5급 공개경쟁 채용제도(공채, 필기와 면접)’와 ‘5급 민간경력자 채용제도(민경채, 서류와 면접)’로 운영하고 있다. 공채 폐지 논리는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들이 관료사회를 지배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산하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가 ‘관피아’로 근무하면서 공직사회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 반면, 제도를 유지(축소)하자는 쪽은 기회균등 및 선발의 공정성·객관성 담보 문제와 함께 경력자 채용제도로 자칫 ‘스펙’ 중심의 특정 계층이 다수 진출해 공직사회가 부와 권력을 가진 집단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현재의 공채제도를 상당 부분 축소하고 민간공채를 확대하자는 입장이다. 첫째로 공채제도는 지나치게 암기능력을 중시하는 필기 시험제도다. 복잡성과 전문성을 특징으로 현대행정은 공무원들에게 전문가적 능력을 요구하고 있으나, 현재의 필기시험은 5급 감독자 직위에 맞는 전문성과 기획·분석능력을 측정하지 못한다. 둘째로 현재의 필기시험은 공직수행능력을 제대로 판별하지 못하고 있다. 시험성적과 근무성적 간의 상관성이 높지 못한 것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셋째로 고시출신들은 동기, 선·후배 간의 집단적 사고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정책 구상이나 활발한 토론, 비판적 논의를 제약한다. 넷째로 고시제도는 능력보다 기수로 승진하는 문화를 가져온다. 그래서 우수한 공무원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터부시하고, 자기 능력의 70%정도만 발휘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신인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고시 서열로 인해 퇴직 후 선배를 밀어주고 후배를 끌어주는 봐주기 문화가 소위 관피아로 변질될 가능성을 높게 한다.

그러나 하나의 제도가 모든 문제를 해소하지는 않으며, 모든 제도는 양날의 칼처럼 사용하는 자에 따라 그 효과는 천양지차다. 하나의 제도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제도의 장점을 융합하는 지혜가 중요하다. 따라서 민간경력자채용을 확대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직렬별로 다양한 분야의 경력자나 전문가를 상시적으로 선발해야 유능한 민간인들이 공무원으로 근무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둘째, 단지 학위나 자격증 같은 화려한 스펙이 아니라 채용 분야에서 근무한 실적과 능력을 엄정하게 평가해 선발하고, 능력에 따른 승진과 신분보장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민경채와 유사한 개방형 공모직위제도는 폐지하거나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무늬만 화려한 제도가 아니라 유능한 공무원이든 민간인이든 능력으로 경쟁해 채용되고 근무할 수 있는 제도로 거듭나야 한다.

다만, 나름의 장점을 지닌 공채제도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은 곤란하다. 화려한 스펙을 쌓아 공직에 진출하는 것이 불가능한 소외된 계층에게도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필기시험의 과목과 출제 내용을 개선해 부분적으로 유지한다면 우수한 능력을 가진 다양한 계층에게 고위공직 진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제 기수나 서열이 아닌 보다 엄정한 근무성적평가로 능력과 실적을 평가받아 우수한 공무원이 승진하는 공직사회로 변모시켜야 한다. 생활급이 아닌 능력급을 확대해 능력있는 공무원에게 보상을 확대하고 정년 보장 등의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고 공무원의 채용, 임용, 훈련, 평가, 순환배치, 퇴직 등을 장기적으로 연구하고 운영할 수 있는 가칭 ‘국가인재관리위원회’의 설립·운영을 제안한다.

<백종섭|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한 고시생이 고시학원 광고를 보고 있다.


■ 전관예우가 ‘관피아’ 양산… 공직자 윤리정책 개혁부터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정부는 최근 정부조직 개편과 공무원 채용방식의 변화 등 관료사회의 개혁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많은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은 행정고시, 좀 더 정확히 말하면 ‘5급 국가직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의 폐지 혹은 축소론이다. 이러한 정부방침은 마치 관피아 문제 등 공직사회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줄 묘수인 것처럼 회자되고 있다.

이른바 ‘관피아’ 문제는 5급 공채 출신 엘리트 관료들이 현직에서 고위 공직을 독점하고, 퇴직 후 준정부기관이나 공기업, 민간기업·협회 등에 광범위하게 재취업함으로써 민관 유착과 관료부패를 양산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5급 공채를 폐지하거나 채용규모를 대폭 줄여서 민간경력자로 대체하면 이런 관피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정부안의 논리이다. 더하여 정부는 민간경력자 채용의 확대가 공무원의 부족한 전문성 문제도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첫째, 관피아가 발생하게 된 원인이 5급 공채 때문이라는 주장의 오류이다. 관피아의 원인은 주로 민간기업이나 이익집단, 심지어 사립대학들까지도 자신들의 업무영역에 규제와 감독을 행사하는 정부 부처 퇴직공무원을 임원이나 협회장, 총장 등으로 영입하여 사실상 로비스트로 쓰려는 의도와 전·현직 고위공무원들의 집단화된 이기주의가 결합한 결과이다. 따라서 5급 공채 자리를 7급 공채 출신이나 민간경력자로 대체하더라도 그들이 고위공무원이 된다면 여전히 관피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관피아 문제는 고위공무원들이 자신이 갖고 있던 권한을 퇴직 후에도 전관예우로 보상받으려는 심리를 민간기업이나 이익집단들이 교묘하게 활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위공무원으로 성장한 민간경력자 출신이 도덕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공채 출신보다 더 심한 관피아의 폐해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관피아 문제의 해법은 고위공무원들이 공익을 위해 제대로 사용해야 할 정당한 정부규제나 감독 권한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부당하게 사용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전관예우 관행을 척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런 관행이 발붙이지 못한다면 민간기업이 독과점 규제를 피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 출신 공무원을 영입하지 않을 것이고, 사립대학들이 교육부 관료를 총장으로 모셔가지도 않을 것이다.

둘째, 민간경력자 채용을 확대하면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의 허구성이다. 공무원의 전문성이 축적되지 않는 것은 공채나 특채 어떤 경로로 채용되더라도 전문성을 계속 축적하고 업무에 활용할 수 없게 하는 폭넓은 순환전보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점과 같은 직급의 전보 대상 직위 간 권한 차이가 매우 크다는 점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는 이런 순환전보시스템을 없애기 위해 현행의 계급제적 인사행정체제를 직위분류제적 인사행정체제로 변경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수십만개에 이르는 정부 전체 직위에 대한 전면적인 직무 분석과 평가가 선행돼야 하기에 직위분류제를 도입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른바 관피아로 통칭되는 관료사회의 집단적 이익추구행위와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 문제가 5급 공채제도에서 비롯됐다는 진단은 잘못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관료집단이 사적 이익추구에 사용하도록 방치하는 공직자 윤리정책의 근본적 개혁과 관련 법령의 정비에 먼저 나서야 한다.

<진재구 | 한국인사행정학회장(청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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