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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가 최근 민간사업자가 보유하고 있는 과밀억제구역의 택지에서 주택을 건설할 때 전용면적 60㎡ 이하 소형주택을 일정 비율 이상 건설하게 한 의무 조항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토부는 이미 주택시장에서 소형주택의 수요가 많아 의무로 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급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도시의 균형 발전과 서민형 주택 보급을 위해 여전히 소형주택 의무 건설이 필요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국토부의 소형주택 건설 의무 폐지를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대표적인 전문가에게 주장의 근거를 들어봤다.

■ 주택시장 상황 변화… 민간부문 자율성 보장을

정 부는 민간사업자가 보유하고 있는 택지에서 건설하는 주택(재건축·재개발사업으로 건설되는 주택 제외)에 대해 소형주택 건설 의무를 폐지하는 내용의 ‘주택조합 등에 대한 주택규모별 공급비율에 관한 지침’ 개정안을 마련해 시행할 예정이다. 당초 소형주택 건설 의무제도의 도입은 민간시장에 자율적으로 맡길 경우 중대형 위주의 주택만 과도하게 건설해 주택수급의 왜곡을 초래하고, 서민주거 불안정을 야기한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정부는 주택시장의 여건 변화로 이 제도의 유지에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소형주택은 공공부문에서 공급하고 있고, 민간부문에서는 시장의 수요 특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러한 조치에 대해 일부에서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60㎡ 이하 소형주택 공급이 크게 줄어 서민의 주거불안정을 확대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상황을 고려할 때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민간부문뿐 아니라 공공부문 등 모든 영역에서 폐지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으나 민간부문, 특히 자체 사업을 위한 택지에만 적용하는 것이어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소형주택 건설 의무제도의 폐지는 당연한 수순이다. 첫째, 중대형 주택에 대한 선호는 주택경기 활황기에 뚜렷하게 나타난다. 중대형 주택일수록 매매차익이 커 부담능력에 관계없이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향후 주택시장에 과거와 같이 활황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의견을 보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주택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실수요에 기반한 안정적 단계에 진입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주택가격이 오른다고 해도 급격한 상승은 없을 것이며, 거래와 가격의 안정적 유지 또는 증가가 예상된다. 실수요를 근거한 시장구조 아래서는 지불능력을 넘는 주택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의 주택시장 상황을 보면 소형주택은 선호가 늘고, 수요의 증가에 따라 가격도 중대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르는 경향을 보이며 공급량도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60㎡ 이하 주택의 인허가 비중은 2007년 26.2%에서 2010년 32.0%, 2012년 41.2%로 커졌다.

둘째, 소형주택의 선호도 증가는 가구구조의 변화에 기인한다. 1~2 인 가구의 증가는 소형주택 선호시장을 꾸준히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1~2인 가구 비중은 2012년 50.5%에서 2014년 52.7%, 2020년 58.5%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1~2인 가구의 증가는 소형주택 수요를 늘릴 것이고, 이에 따라 소형주택 의무비율 없이도 소형주택 공급은 자연스럽게 뒤따를 것이다. 셋째, 중소형 주택의 ㎡당 가격이 대형주택 가격보다 높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는 모든 지역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 하위시장의 특성에 따라 소형주택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 늘고 있다.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지역에서 중소형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사업성이 높기 때문에 정부가 규제하지 않아도 중소형 주택을 더 많이 공급하게 된다.

넷째, 그동안 소형주택 건설 의무비율은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에만 적용해왔다. 2008 년 금융위기 이후 주택시장을 보면 수도권은 침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반면 지방은 주택시장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다. 이러한 여건에서도 지방 주택시장은 소형주택 건설 의무비율 규정 없이도 자율적으로 균형을 유지했다. 5대 광역시의 사례를 보면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주택규모별 증가율이 소형은 268%, 중형은 53.6% 각각 늘어난 반면 대형은 50.1% 감소했다. 규제 없이도 시장여건에 따라 수급이 이뤄진 것이다. 따라서 가구소득과 가구 구성, 주택시장 여건 변화에 따라 주택규모에 대한 선호가 달라지므로 주택 규모를 지역시장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 제적으로도 주택정책을 통해 공급되는 주택 규모 자체를 통제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도 이제 민간부문은 시장에 맡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다만 모니터링은 필요하며, 일률적 규제가 아닌 인센티브를 통해 소형을 공급하도록 유도해 최소한의 우려를 줄여야 할 것이다.

<김태섭 | 주택산업연구원 정책연구실장>


■ 재건축 활성화 노린 것… 지자체에 결정 맡겨야

최 근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목격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물결을 타고 안전, 위생, 도시, 건축 등 인간의 생명과 삶의 질을 결정하는 부문에까지 규제 완화의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규제 완화는 경쟁력 제고, 민간 자율성 증대, 일자리 창출 등과 같은 선의의 목표를 전면에 내세우기 때문에 엄청난 부작용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본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국토교통부는 부작용이 예상되는 또 하나의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국토부가 지난 4월29일 ‘도시정비법’ 시행령안으로 입법예고한 재건축사업의 소형주택 의무화 비율 완화 조치가 그것이다. 그 동안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주택정책 중에는 목돈 안 드는 전세주택, 월세 세액공제 등과 같이 현실과 동떨어진다고 비판을 받거나 후속 수정대책을 발표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실패한 정책의 목록에 또 하나를 추가하려고 한다.

국 토부는 지난 2월 올해 업무계획 보고를 통해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폐지와 함께 재건축사업에서의 소형주택 의무비율 규제 완화 조치를 부동산 시장 ‘정상화 조치’의 일환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과밀억제권역에서 300가구 이상의 주택단지를 재건축하는 사업 시행자는 정비사업으로 공급하는 전용면적 85㎡ 이하의 주택을 전체 주택 중 60%까지만 공급하면 된다. 그동안 서울시와 경기도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조례를 통해 60㎡ 이하의 소형주택을 20%까지 건설하도록 했던 근거조항 자체를 삭제해버렸다.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소형주택에 대한 수요가 증대하고 있어 소형주택의 건설을 의무화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주택건설업계가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해 줄기차게 주장해온 것이었다. 결국 이 규제를 폐지해 재건축사업의 수익성을 높이고, 재건축사업을 활성화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 렇다면 소형주택 의무화 비율의 폐지가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를 따져봐야 한다. 우선, 소형주택의 부족이 우려된다. 정부는 60㎡ 이하 소형주택의 공급비율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 중 대부분이 도시형 생활주택처럼 초소형 주택이다. 재건축사업을 통해서라도 2~3인 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둘째, 강남·강북 지역 간의 주택가격 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이고, 강남지역은 ‘그들만의’ 최고급 주거지가 될 것이다. 강북지역의 경우 중대형 주택에 대한 수요도 적고 소형주택의 면적당 가격이 오히려 더 비싸기 때문에 이번 조치가 별로 영향이 없을 수 있다. 반면, 강남지역에서는 중대형 주택의 면적당 가격이 훨씬 높기 때문에 중대형 주택만 집중 공급될 수 있다.

셋째, 소형주택의 비율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조례 위임의 근거를 없애버림으로써 지자체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크다. 이번 조치로 가장 영향을 받게 될 서울시는 지난 3월20일 소형주택 의무화 비율 완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반대의견을 밝혔다. 다 양한 주택수요를 반영하고 기존 주거지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에 중앙정부는 누구를 위해 주택정책을 추진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넷째, 이번 조치로 재건축사업의 불확실성은 커질 것이다. 60㎡ 이하의 소형주택 비율에 대한 조례 기준이 없기 때문에 소형주택의 적정한 비율을 재건축단지별로 정비계획 수립이나 심의 과정에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현재 강남지역에서 사업을 추진 중인 13개 재건축구역에는 전체가구의 약 70%인 1만2000여가구가 60㎡ 이하의 소형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2030년 서울의 1~2인 가구 비중은 6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소형주택 의무 공급 규정은 규제 완화라는 정책목표 달성이나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명분으로 폐기할 것이 아니다. 도시의 다양성 확보와 지속가능한 주거지 관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앞으로 지자체가 소형주택의 공급비율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조례의 위임규정을 유지하도록 시행령 개정안을 철회해야 한다.

<변창흠 | 세종대 교수·한국도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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