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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잊을 수가 없다. 온 국민의 가슴에 든 멍울이 채 가시지 않은 가운데 브라질월드컵 개막이 성큼 다가왔다. 한국 축구의 명물이 된 월드컵 거리응원을 두고 얘기들이 분분하다. “국가의 상중에 거리응원이란 이름으로 축제판을 벌이는 것은 우려스럽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힘든 만큼 일상도 소중하다”며 “응원을 통해 다시 힘을 낼 수 있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마음은 한결같지만 거리응원을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 힘든 만큼 일상도 소중… 응원 통해 힘을 낼 수 있다

초기의 거리응원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조별예선 첫 경기 멕시코전을 앞두고 ‘붉은 악마’ 회원들이 광화문 사거리에 모인 게 거리응원의 시초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경기장에 못 간 시민들이 서울광장에 자발적으로 모인 것을 계기로 전국으로 확산됐고 이후 축구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벌어지는 국가대표 경기 때 자연스럽게 거리응원이 진행되면서 하나의 문화로 성장했습니다.

처음에 자발적으로 모여 시작된 거리응원이 규모가 커지자 국제축구연맹(FIFA)은 규정까지 만들어 ‘공개 장소 시청권’(Public Viewing)이라는 명목으로 수수료를 받고 판매하고 있습니다. 물론 FIFA 후원사 보호라는 명분입니다. 문제는 돈만 내면 어떤 기업이든 거리응원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겁니다. 2006년, 2010년 전국적으로 기업의 상업적 거리응원이 극에 달했습니다. 결국 2010년 서울광장을 선점한 대기업 때문에 붉은 악마는 서울광장 거리응원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서울시의 중재로 서울광장은 ‘노브랜딩’이 됐고 ‘비상업적’을 전제로 서울광장 거리응원이 진행됐습니다. 올해도 서울시와 비상업적인 서울광장 거리응원에 대한 협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4월16일 세월호의 아픔이 발생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너무나 가슴이 아픈 세월호 말입니다. 같이 월드컵을 즐겼을 세월호의 아이들.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많은 분들은 ‘시끄러운’ 거리응원을 걱정하십니다. 상업적 이벤트 공간에서 술먹고 춤추는 놀자판 거리응원에 익숙해져 있으니 그런 걱정은 당연한 것인지 모릅니다. 술에 취한 젊은이들, 연예인 지망생들의 튀기 위한 노출 경쟁 등…. 어딜 봐도 지금 분위기 속에서는 달갑게 보이지 않습니다.

붉은 악마는 치유의 거리응원을 생각해봤습니다. 왜 거리응원이 시끄러워야 하는가. 차분한 거리응원, 시민들과 함께하는 조용한 거리응원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2002년 전 세계는 우리의 거리응원을 보면서 성숙한 시민 의식에 놀라워했습니다.

잊혀질까 두렵습니까?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월드컵이 시작되면 세월호는 묻힌다고…, 잊혀진다고…. 월드컵이 끝나면 아시안게임 같은 큰 이슈들은 계속 생깁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들은 세월호를 잊을 수 있습니까? 과거 백화점이 무너지고, 한강 다리가 끊어질 때도 우린 지금처럼 분노하고 슬퍼했습니다. 한데 우린 분노하고 슬퍼만 했지 잊어먹는 우를 범했습니다. 이제는 성숙해질 때라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이야기합니다. 대한민국을 외치기 부끄럽다고. 저는 감히 말합니다. 대한민국은 잘못이 없다고. 오히려 대한민국에 부끄럽습니다. 붉은 악마 응원의 상징인 “대한민국” 구호에는 선창이 있습니다.

“작지만 강한 나라,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 “대!한!민!국!”

무엇이 강한 나라일까요? 우리에게 대한민국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욕하고만 있을 순 없습니다. 일상생활에서의 강함이 국민의 무서움이고 국가의 힘이 됩니다. 그것이 강한 나라, ‘선진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저의 사랑하는 아들 민재에게 그런 ‘대한민국’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거리응원의 창작자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IMF 시절 금융위기를 겨우 벗어나며 심신이 지쳐 있던 국민들은 2002년 거리응원을 통해 잠시 쉬고 있던 심장을 다시 뛰게 했고 남녀노소 구분 없이 “대한민국”을 외쳤습니다. 2002년 이후 잠시 정체성을 잃었던 거리응원 문화.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전 국민이 우울해하고 지쳐 있는 지금 치유의 거리응원이 될 수는 없을까요. 전 국민이 모여 기쁨을 나눴듯이 슬픔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붉은 악마는 조심스럽게 ‘치유’로서의 거리응원을 국민들에게 제안해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염원을 담아 우리 대표팀도 힘을 내주길 바랍니다.

<정기현 | ‘붉은 악마’ 대외협력팀장>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D-100 대한민국 응원 출정식’


■ 단원고 아이들의 희생 ‘함께 기억하는 자리’ 돼야

안타까운 세월호 참사 후 계절은 훌쩍 봄을 건너뛰었고 벌써 때이른 여름에 접어들었다. 며칠 전에는 어린 혼들을 기리는 49재가 있었다. 어렵사리 부모와 친지 곁으로 돌아온 수백명의 억울한 주검 앞에 온 국민이 참담한 가운데 아직도 여러 아이들이 차가운 바닷물 속에 갇혀 있고, 진도 팽목항 언저리에서 이들을 찾는 부모의 애절한 외침이 메아리처럼 귓전을 울리고 있다. 소설가 박완서는 멀쩡하기만 했던 청년의 아들을 창졸간에 교통사고로 잃고 그 애통한 심정을 참척(慘慽)의 고통과 슬픔으로 절절히 넋두리하면서, 당시 88올림픽이 여전히 열리리라는 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친구들, 선생님과 함께 즐거운 수학여행 길에 나섰던 수백명의 안산 단원고 아이들을 더는 웃으며 가슴에 품을 수 없는 부모와 친지의 애통한 마음이야 그 무엇으로도 헤아릴 길이 없다. 그 분들의 바람대로 나 또한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앞으로도 잊지 않고 내내 기억하려 한다.

많은 아이들이 여태 배 안에 갇혀 있고 유족들은 물론 온 국민의 슬픔이 여전한 와중에 뜬금없이 소비심리 위축과 경제위기를 언급하면서 국면 전환을 꾀하고자 했던 대통령에게 여론은 공감 능력의 부족을 질타했는데,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도 이제는 슬픔을 거두고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한편 일리가 있고 맞는 말이다. 가족의 불운한 일을 겪은 어릿광대가 북받치는 슬픔을 참으면서 무대에 올라 자신이 맡은 공연을 끝마쳐야 하는 장면에서 비롯된 말이 세간에 자주 회자되는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이다. 해리 골든이 쓴 유명한 에세이의 내용이다.

그렇다. 이 슬픈 상황에서도 우리는 할 일을 해야 한다. 집에서 웃으며 아이들을 돌봐야 하고, 직장에서 맡은 일을 해내야 하고, 책임이 있는 정부는 죄인의 심정으로 이 같은 참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환골탈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때마침 공교롭게도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 경기가 성큼 눈앞에 다가서 있다. 유가족들에게는 참척의 슬픔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데도 참으로 속절없는 것이 시간의 흐름이다. 여느 사람들에게는 축구 국가대표팀이 어렵사리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쾌거를 이뤄낸 이번 월드컵 경기가 남다른 축제이자 이벤트일 것이다. 또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국정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정부와 여당에는 국면 전환을 꾀하기에 좋은 계기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냥 들뜨고 흥분된 기분으로 경기를 지켜볼 수만은 없을 성싶다.

그렇다고 해서 다양한 차림새로 한껏 멋내고 길거리응원에 나설 많은 이들을 그저 야속하다며 타박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번 참사로 인해 세상을 등진 많은 단원고 아이들 역시 그간 우리 국가대표팀이 치러온 여러 월드컵 예선전 경기를 친구들과 함께 지켜보면서 열두번째 태극전사로 신나게 응원했을 모습이 선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응원을 해야 한다면 지금 비록 우리와는 세상을 달리하지만 여느 축구 팬들 못지않게 열심이었을 단원고 아이들을 기억하면서, 이들과 함께 응원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는 과문한 탓에 당장 마땅한 해법이 떠오르질 않는다. 이는 길거리응원을 주관하는 측에서 보다 진지하게 논의해 좋은 대안을 마련해 주었으면 한다.

붉은 악마 측에서 세월호 참사를 고려해 서울광장에서 대규모 거리응원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름 속깊은 배려에 반갑고 고마웠다. 문제만 던지고 해법은 정작 숙제로 미루어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이종수 |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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