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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삼식 극작, 손진책 연출의 <3월의 눈>은 30년 삶이 깃든 한옥 철거가 임박해 정든 사람과 물건들을 떠나보내고 떠나가는 노부부 장오와 이순의 이야기다. 2011년 3월 초연된 이 작품은 올해 3월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신구와 손숙씨의 연기와 더불어 상실의 기억들로 가득한 황혼이 얼마나 깊은 울림을 남겨주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가진 것을 다 내주고 떠나는 장오의 뒷모습은 소멸해가는 것이 실은 새로운 생명의 옷으로 갈아입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소책자에 이렇게 소개된 팔순의 장오는 혼잣말처럼 우리에게 건넨다. “사람 백정은 떵떵거리면서 산다. 하지만 죄 없는 사람은 고생한다. 죄지은 놈이 죄 갚음 당하지 않는다.”

극중 ‘3월의 눈’은 민주화운동을 하다 행방불명된 노부부의 아들이 노모가 미끄러질까봐 새벽 집 마당에 몰래 와서 치우고 간 눈이다. 마당의 인기척을 모른 척하는 방안의 아버지께 절을 할 때 아들의 손과 무릎과 이마에 닿았던 서늘한 눈이다. <3월의 눈>은 한국전쟁과 이념 대결, 재개발 열풍과 가축 ‘살처분’, 아비 없이 자란 손자의 빚을 갚아주는 긴 겨울을 겨우 물리고 막 볕 드는 ‘3월의 눈’을 배경으로 삼는다. 이 ‘3월의 눈’은 T S 엘리엇이 제1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을 길러”줬다고 노래한 100년 전 그 눈이기도 하다.

하여 시인은 ‘황무지’에서 “오히려 겨울은 따듯했다”고 썼다. ‘3월의 눈’이 그친 뒤의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추억과 욕정을 뒤섞”는 고된 상호작용을 거쳐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워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야 하는 4월을 ‘가장 잔인한 달’로 읽은 혜안은 67년 전 박목월 시인의 ‘4월의 노래’와 겹친다.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할 “목련꽃 그늘”은 너무도 쉬이 사라지고 “피리를 부노라” 할 “구름꽃 피는 언덕”엔 황사 가득한 이 4월이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임을 시인은 일찍 보았다. 그렇게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했던 청춘들의 기억은 4월16일에 멈추어 또 하루를 보탠다.

연극 '3월의 눈' (출처 : 경향DB)


그 기억은 세월호를 타고 팽목항 앞바다에 가라앉은 304명의 “생명의 등불”이고 “꿈의 계절”이다. 그날로부터 지금까지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로 남은 304개의 기억이다. 그 낱낱의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부모들의 “눈물 어린 무지개” 고통이다. 동네 이웃과 친구는 물론 그 살풍경을 실시간 시청한 모두의 “눈물 어린 무지개” 공감이다.

해서 겨울을 난 이 땅은 ‘3월의 눈’을 만나고 ‘4월의 물’에 젖는다. 그 바다와 그 비와 그 눈물로 우리는 저마다의 “추억과 욕정을 뒤”섞어서 “잠든 뿌리를 깨”우는 물이 된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기 위해서다. 그 라일락이 “생명의 등불”이자 “꿈의 계절”로 돌아올 것이라 믿고 싶어서다.

그 믿음을 ‘가장 잔인한 달’ 4월에 실천하는 사람들 덕에 믿음은 두터워진다. 부활절이자 식목일인 4월5일 광화문광장에선 “곁에 머물다”는 주제로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예배’가 열렸다. 4월6일엔 제주시 아랑초등학교 4학년 90명 앞에서 69세의 강춘희씨가 명예강사로 섰다. 제주 4·3사건 유가족인 강씨는 제주도교육청이 올해부터 시행하는 ‘4·3 평화인권교육’에 따라 1948년 조부와 부친을 잃은 지 67년 만에 처음으로 공적 자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이석문 교육감은 이 교육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인권’과 ‘생명의 소중함’ ”이라고 명료하게 밝혔다.

“인권과 생명의 소중함”을 기리는 일은 4월8일 국민대 북악관 708호실의 ‘남윤철 강의실’ 명명식으로 이어졌다. 세월호 침몰 당시 제자들을 구조한 고 남윤철 단원고 교사가 마지막 전공강의를 들었던 장소다. ‘남윤철 장학금’ 수여식도 같이 진행됐다. 4월11일엔 세월호 넋을 기리는 ‘풍등’ 뮤직비디오가 공개된다. 노래 ‘풍등’은 조덕섭 작사, 채승윤 작곡, 은준호 편곡, 조관우 노래로 유튜브에 공개돼 있다. 뮤직비디오는 배우이자 감독인 이경영씨 등 다수 영화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었다.

여전히 “사람 백정은 떵떵거리”고 “죄 없는 사람은 고생”하는 세상이지만 ‘3월의 눈’과 ‘4월의 물’은 “죽은 땅” 곳곳에 녹아들고 있다.

4월이 잔인한 이유는 우리가 믿고자 하는 것을 보듬고 키워내기 위해 마음 쓰고 품을 내는 일이 “죄지은 놈이 죄 갚음 당하지 않는” 주류 질서의 저 바깥에 까마득한 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은 계속 생겨난다. 라일락 꽃을 키워내고 라일락 꽃향기가 더 멀리 날아갈 수 있게 점점점 번지고 있다.

<3월의 눈>의 배삼식 극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연극에는 기록과 증언의 임무가 있다.” 연극뿐이겠는가. 굼뜬 것처럼 보이지만 4월의 이 침묵은 거대한 믿음의 서시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기억하는 힘은 진실을 규명하고 죄지은 자를 속죄하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렇게 ‘3월의 눈’과 ‘4월의 물’은 소멸을 넘어선 생명의 순환으로 나아가고 있다.

참고, 5월의 탄생화 라일락의 뜻은 ‘사랑의 싹’이고 우리말로는 ‘수수꽃다리’로 불렀다 한다.


김종휘 | 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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