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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핀란드는 대한민국과 유사한 면이 많은 나라다. 1917년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핀란드는 곧바로 좌·우 간의 내전을 치르게 된다. 당시 핀란드 인구가 300만명 정도이던 시절이었는데, 내전의 와중에 3만6000명의 핀란드인이 사망했다. 인구의 1%가 넘는 숫자였다. 전투 중에 죽은 경우뿐만 아니라, 테러와 질병, 포로수용소에서의 굶주림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다. 비참한 상황이었다. 내전에는 독일, 소련의 외국군대까지 개입했다. 내전의 결과는 우파의 승리였다. 우파는 왕이 있는 군주국을 선호했다. 그러나 우파를 지원했던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핀란드는 공화국의 길을 가게 된다.

그러나 공화국의 권력구조를 둘러싸고도 이견들이 존재했다. 내전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강력한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입장과 그것에 반대하는 입장이 존재했다. 그런 와중에 치러진 1919년 핀란드 총선에서는 특정 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할 수 없었다. 핀란드가 택하고 있던 비례대표제 선거제도 덕분이었다.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이 배분되는 선거제도인데, 1위를 차지한 정당이 얻었던 득표율은 40% 정도였다. 그래서 여러 정당들이 타협해서 내각을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1919년에는 핀란드 헌법이 만들어졌다. 이 헌법은 양쪽 입장의 타협물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통령제와 의회제가 혼합된 형태를 택했다. 이원집정부제(준대통령제,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불린다)가 만들어진 것이다. 대통령이 의회해산권, 군통수권, 총리임명권 등 강력한 권한을 갖지만, 총리 중심의 내각은 의회 주도로 운영되는 모델이었다.

이와 같은 타협안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사람은 1919년 핀란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카를로 유호 스톨베리’였다. 그는 당시 외국의 헌법과 정치제도를 깊이 연구했던 법학자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우파였지만, 자유주의자였다. 여성참정권을 지지했고, 공화국을 지지했다. 그는 혼합형 정부형태라는 타협안이 성사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다만, 스톨베리는 대통령 직선제를 지지했지만, 이 부분에서는 그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았다. 당시 핀란드는 대통령 간접선거제를 택했고, 1994년에야 대통령 직선제로 바뀐다(결선투표제까지 도입됐다). 스톨베리는 1919년 간접선거를 통해 핀란드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스톨베리는 내전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핀란드에서 입헌주의 정치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1925년 대통령 연임 시도를 하지 않고 물러난다.

그러나 핀란드의 시련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1930년에는 극우파들이 스톨베리 전 대통령을 납치하는 사건을 일으키고, 쿠데타까지 일으키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좌절되었다. 핀란드는 1939년과 1941년 소련과 두차례 전쟁을 치르면서 영토의 15% 정도를 잃고 전쟁배상금까지 물어주는 상황에 내몰리기도 한다. 그러나 핀란드는 내전과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복지국가를 만들어 왔다. 핀란드의 교육은 세계적인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부패가 없는 나라에 속하고, 행복도나 ‘삶의 질’도 높은 편에 속한다. 핀란드가 시련 속에서도 지금의 핀란드를 만들 수 있었던 원인은 정치인들의 높은 책임감 등에도 있지만, 선거제도를 빼놓을 수 없다. 핀란드는 처음부터 국회 구성에서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이 제도는 표심이 그대로 반영되는 의회 구성을 가능하게 했다.

핀란드 국회는 자연스럽게 다당제 국회가 되었다. 좌파, 우파, 중도파 모두 국회에 들어오게 되었다. 어느 한쪽이 마음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숱한 갈등 속에서도 토론과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 수밖에 없었다. 극단적인 주장은 자연스럽게 도태되게 되었다. 이런 국회를 가능하게 한 선거제도야말로 핀란드 민주주의 시스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이 동시에 논의되고 있다. 국회에서는 정치개혁특위와 개헌특위가 가동 중에 있다. 그러나 국회 내부에서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의 국회는 생산성이 제로에 가까운 상황이고, 이 난국을 헤쳐 갈 ‘정치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대통령 탄핵 같은 상황을 겪고도 정치시스템을 개혁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다시 퇴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핀란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100년 가까운 핀란드 공화국의 역사에서 가장 지속성을 갖고 있는 것은 선거제도이다. 오히려 권력구조는 계속 변화해 왔다. 초기에는 내전과 전쟁 같은 상황을 겪으면서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강력한 권한을 가졌다. 그러나 1990년대에 냉전이 종식되고 평화분위기가 만들어지자 핀란드는 헌법을 정비하여 대통령의 권력을 의회로 좀 더 분산시키는 개헌을 했다. 권력구조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대내외적인 여건에 따라 변동가능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선거제도이다. 민주주의를 한다면서 민심을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갖추지 못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이다. 그래서 정치시스템 개혁의 입구는 선거제도 개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을 이뤄내야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부패를 없애고, 토론이 가능하고 문제해결 능력이 있는 정치를 만들 수 있다. 국회 스스로 하지 못한다면, 주권자들이 나서서라도 이것 하나만은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그래야 촛불혁명이 완성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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