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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문 앞에는 매일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국회 정문 앞은 1인 시위 장소로는 그리 좋지 않다. 지나다니는 행인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굳이 국회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이유는 국회의원들이 피켓 내용을 한 번이라도 보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대개 차량을 타고 경비대원들이 지키는 정문을 통과해버린다. 결국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국회의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런 풍경을 보면, 대한민국 국회와 시민 간의 거리가 느껴진다. 국회는 시민 옆에 있지 않다. 국회 담장에 둘러싸여 여의도 면적의 8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자기들끼리 존재할 뿐이다. 그 넓은 땅은 시민들이 평화롭게 의견을 표명하고, 휴식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국회 담장에서 100m 이내는 집회도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국회 정문 앞에서는 기자회견이 열린다. 집회를 못하게 해 놓으니,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기자회견’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론을 상대로 한 기자회견은 ‘집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찰·검찰이 기자회견을 한 것을 두고 ‘집회’를 했다면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수사·기소를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것이 기자회견이고, 어떤 것이 집회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사법기관 맘대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법해석이 벌어진다.

이 모든 것은 국회 담장이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국회 담장이 없다면 국회 건물 앞에 가서 1인 시위도 할 수 있고, 지금 국회 정문이 있는 위치에서 집회도 할 수 있다. 국회 안의 넓은 잔디마당에서 시민들이 휴식도 하고 문화행사도 열 수 있을 것이다. 진짜 ‘열린 국회’ ‘국민의 국회’라면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의 여의도 국회 자리로 국회의사당이 옮겨진 것은 1975년의 일이다. 그전까지는 지금의 서울특별시의회 자리에 국회의사당이 있었다. 그때에는 이런 담장이 없었다. 외국의 국회도 대부분 담장이 없다. 국회 건물에 들어갈 때에야 검색도 하겠지만, 국회 건물 바깥은 열려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국회 담장을 철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철거 못할 이유가 없다. 담장 철거는 국회의 특권을 무너뜨리는 상징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20대 국회가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를 표방했지만, 성과는 민망한 수준이다.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을 72시간 내에 본회의에 자동상정되게 하고, 친·인척을 보좌직원으로 채용할 때 신고의무를 부여했다지만, 너무 당연한 것들이다. 만 40세 미만 국회의원은 민방위 훈련에 참여하도록 법개정을 했다는데, 작년 4월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 중 만 40세 미만인 사람은 3명뿐이었다. 그 외의 ‘특권 내려놓기’는 말만 무성했을 뿐, 실제로 된 게 없다. 정작 시민들의 불만이 높은 문제들은 개선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노동자 평균연봉의 4배에 달하는 국회의원 연봉(2016년 1억4700만원), 인턴 2명을 포함해서 9명에 달하는 개인 보좌진, 81억원에 달하는 특수활동비, 전직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특혜성 연금 문제는 개선된 것이 없다.

국회가 쓰는 예산 관련 정보를 비공개하는 것도 여전하다. 입법 및 정책활동에 쓰라고 지급되는 ‘입법 및 정책개발비’ 지출증빙서류조차 비공개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는 여전히 특권의식으로 무장된 국회이다. 이런 국회를 바꾸기 위한 첫 단추로 ‘담장 철거’가 반드시 필요하다. 다행히 국회 내에서도 이런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과거에 국회담장 허물기를 제안했었다. 지난 5월 바른정당은 국회담장 허물기를 당론으로 채택했다고 한다. 국회 담장을 허무는 것과 함께 정치개혁, 국회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토론을 국회 안 잔디마당에서 한판 벌여보자. 스웨덴은 각 정당들, 시민단체, 학계, 언론이 참여하는 정치박람회를 매년 열고 있다. 수백개의 부스가 차려지고 수천개의 세미나가 열린다. 이런 토론마당을 국회 안 잔디마당에서 열고, 한국정치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대안들에 대해 토론을 펼쳐보자.

정치개혁, 국회개혁은 보수·진보의 문제도 아니다.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한 정치를 만들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국회는 영원히 불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삶에 필요한 정책들이 제대로 토론되지 못하는 국회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제대로 된 국회의원이라면, 한 번쯤은 ‘국회다운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해 보고 싶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국회에 설치된 정치개혁특위의 논의방식도 바꿔야 한다. 이제는 국회의원들끼리 하는 정치개혁 논의가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하는 정치개혁 논의가 되어야 한다. 민심을 왜곡하고 수많은 사표를 양산하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 내년 6월로 다가온 지방선거제도는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를 놓고 시민들과 함께 토론해야 한다. 여의도 8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국회는 이런 토론의 광장으로 변신해야 한다.

10월28일로 다가온 촛불 1주년에 국회의 담장이 철거되면 어떨까라는 상상도 해 본다. 한꺼번에 담장을 철거하지 못한다면, 국회 출입을 개방하고 앞서 얘기한 정치개혁박람회를 국회 안마당에서 여는 것으로 시작해도 좋다. 이런 변화도 하지 않겠다면 ‘이제는 국회를 바꿀 때’라는 민심이 터져나올 것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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