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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개헌의 역사는 적나라한 권력욕의 역사였다. 이 과정에서 민주공화국의 시민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제헌헌법부터가 권력투쟁의 산물로 대통령중심제와 의원내각제가 뒤섞인 불안정한 헌법으로 탄생했다. 1952년의 이른바 ‘발췌개헌’은 정부안과 야당안에서 이곳저곳 발췌하고, 군인들이 의사당을 포위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1954년의 사사오입 개헌은 이승만 대통령의 3선 길을 열어주기 위해 국회의원을 소수점으로 잘라 사사오입 해버리는 기발한 창의력을 선보였다. 4·19혁명 직후에 이루어진 3차 개헌은 그나마 최초의 합법적 절차에 따른 개헌이었으나, 과도정부 수립 후 한 달 만에 개헌안이 제출되었으니 별다른 숙고와 합의가 이루어지긴 어려웠을 것이다. 3·15 부정선거와 4·19를 둘러싼 ‘민주반역자’ 처벌 요구에 따라 이루어진 4차 개헌은 1~2주 만에 개헌안 제출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5·16 군사정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주도한 5차 개헌은 그나마 3개월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쳤는데, 쿠데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입법·사법·행정의 3권을 모두 장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정희의 3선 길을 열어준 3선 개헌은 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점거한 상태에서 여당인 공화당 의원들이 몰래 장소를 옮겨 통과시켰고, 야당은 개헌안 가결 후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신헌법으로의 개정은 박정희 종신 집권을 위한 것이었고, 제5공화국 헌법은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의 총칼 아래 만들어졌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복원을 가능케 한 1987년 헌법도 사실은 6·10 민주항쟁의 거대한 파도 속에서 필사적으로 정권을 잡기 위한 노태우 당시 민정당 후보의 6·29 선언으로 그 물꼬가 트였다.

그로부터 30년. 이제 또 한 번의 개헌이 논의되고 있다. 헌법은 이 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하고 있지만, 매번 개헌은 그 민주공화국의 시민들과는 아무 상관없이 만들어지고 고쳐지다 보니 시민들은 헌법에 무지하고 무관심하다. 시민들이 헌법을 잘 알고, 헌법에 애정을 가지고, 대통령을 포함해 누구라도 반헌법적 행위를 하는 자들을 우리 공동체의 토대를 갉아먹는 공공의 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면 87년 헌법하에서도 훨씬 더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박근혜 같은 대통령을 탄생시킨 것도 87년 헌법의 한계이지만, 시민들이 “이게 나라냐”며 국가의 근본 토대를 질문하기 시작하자 바로 그 박근혜 탄핵을 가능하게 한 것도 87년 헌법이었음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번 개헌은 다를까. 지금대로라면 무력 동원이 없을 뿐, 권력 나누기를 위한 또 한 번의 정치공학으로 끝날 공산이 높아 보인다. 국회 개헌특위는 정치적 유불리와 다음 정권 창출을 위한 눈치보기만 하느라 1년 세월을 허송했지만 아직 아무것도 합의된 것이 없다. 선호하는 권력구조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이따금씩 발표되는데, 각각의 정부형태가 우리에게 적용되었을 때 어떤 장단점을 가질지 정확하게 알고 응답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여론’조사가 아니라 ‘느낌’조사라고 보는 것이 맞다.

시민 없이 정파의 이익을 위해 개헌하고, 그래서 시민은 헌법에 관심도 애정도 없고, 그래서 헌법은 구석에 처박힌 채 최소한의 기능밖에 하지 못하는 개헌 잔혹사를 또 반복할 것인가. 핵심은 학습, 숙의, 그리고 수용이다. 개헌을 계기로 권력구조뿐 아니라 지방분권과 기본권 등 주요 쟁점을 시민들이 광범위하게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학습을 통해 각각의 장단점을 알고 나면 무엇을 우리 사회의 근간으로 삼을 것인지 숙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게 학습하고 숙의해야만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헌법이 설사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그것을 수용하고 헌법에 애정을 가지게 된다. 시민들이 헌법을 내 것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헌법은 우리의 일상 속에 살아 움직이게 될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국민투표를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국회의결과 국민투표에 필요한 날짜를 감안할 때 대체로 내년 2월 말까지는 개헌안이 만들어져야 한다. 학습, 숙의, 수용을 하기에는 턱없이 촉박한 시간이다. 그렇더라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조차 없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멈춰진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개헌이야말로 그러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낼 절호의 기회이다. 일각에서는 개헌이 국회의 고유권한이라는 주장도 들리는데, 개헌안을 만드는 과정에 시민을 배제하라는 조항은 헌법 어디에도 없다. 필요하다면 지방선거 이후로 넘기는 안도 배제할 수는 없다.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는 ‘랜덤 개헌’보다는 어렵더라도 ‘뒤늦은 개헌’이 나을 것이다.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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