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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1주년을 맞이했다. 돌이켜보면 촛불은 퇴행적 수구보수에 볼모로 잡힌 대한민국을 역사의 진공상태에서 구해낸 일대 사건이었다. 이명박 정부 5년이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정체의 시간이었다면 박근혜 정부 4년은 역사를 뒤로 돌리는 퇴행의 시간이었다. 그러는 사이 골든타임은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촛불은 이 기나긴 정체와 퇴행을 끝내고 이 나라가 적어도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되찾았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현 정부는 촛불이 탄생시킨 정부임을 강조해왔고, 요즘은 ‘촛불혁명’이라는 단어도 많이 쓰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며 지난해 10월29일부터 시작된 촛불집회 1주년을 맞아 지난 28일 서울 광화문광장 등 전국에서 이를 기념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에 나란히 놓아둔 종이컵들에서 촛불이 타오르는 가운데 한 시민이 ‘촛불은 계속된다’고 적힌 종이컵을 놓고 있다. 이준헌 기자

정치적인 수식어를 걷어내고 본다면 촛불은 과연 객관적으로 무엇이었을까. 1주년을 맞은 요즘 학계에서도 다양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고, 필자도 그 한 귀퉁이를 얻어 분석을 해보았다. 주요한 결과는 이런 것들이다. 첫째, 작년 10월24일 태블릿 PC 보도와 충격적인 국정농단 사태의 전모가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을 때 시민들이 보인 즉각적인 반응은 ‘대의제 불신’이었다. 태블릿 PC 보도 40일 후에 이루어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정당 이탈이었다. 국정농단의 책임을 져야 할 당시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가장 많이 이탈했지만, 야당 지지자들도 만만치 않은 수가 ‘지지정당 없음’으로 돌아섰다. 전체적으로 60%에 육박하는 유권자가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응답했다. 새누리당 불신이 가장 컸지만 다른 정당 불신도 만만치 않았고, 결국은 대의제 민주주의 불신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시민들이 직접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섰다.

둘째, 약 24주에 걸쳐 진행된 촛불집회를 일주일 단위로 쪼개서 매주 무엇이 핵심 이슈였는지 담론분석을 해보았다. 24주를 관통한 핵심단어는 딱 두 개. ‘분노’와 ‘탄핵’이었다. 정당과 정치인들은 촛불광장에서 환영받지 못했는데, 새누리당과 그 후신인 자유한국당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민주당이나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조차 초기에는 환영보다는 비판의 대상이었다. 문재인 당시 후보가 촛불광장에서 환영받게 된 것은 대선이 가까워지고 촛불정신을 대선 승리로 결론지어야 할 필요성이 가시화되면서였다. 이 또한 대의제 민주주의 불신의 또 다른 얼굴일 것이다.

셋째,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서 비교해보니 참여한 사람들은 정치에 대한 관심이 유의미하게 높아졌고, 내 손으로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정치효능감도 유의미하게 높아졌다. 이것은 촛불이 가져온 긍정적인 학습효과라 할 것이다. 그런데 촛불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은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정치 불신이고, 다른 하나는 인물중심 투표이다. 촛불에 참여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불신은 여전했고, 촛불을 경험한 사람들도 정책, 정당, 국정운영 능력 등과 별 상관없는 투표를 했다는 점에서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과 차이가 없었다. 유일한 차이는 참여자들이 비참여자들보다 후보의 도덕성을 더 중요하게 고려했다는 점이다.

종합해보자. 촛불은 대한민국을 역사의 퇴행에서 구해냈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동시에 정치에 대한 관심과 정치효능감을 높이는 긍정적 학습의 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촛불은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개선하지 못했고 오히려 일정 부분 강화시킨 면도 있으며, 그 결과 투표는 후보자의 도덕성이라는 인물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국정농단을 계기로 그 극단적인 한계를 보여줬으니 촛불이라는 시민민주주의 혹은 직접민주주의가 그 자리를 대체하려는 사회적 힘이 그만큼 강해지는 것 말이다. 다른 한편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의 성공은 숙의민주주의가 한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촛불 1주년을 맞는 교훈이 단순히 촛불의 정신을 계승하고 촛불의 명령을 떠안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될 것이다. 촛불은 위대했지만 완전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촛불의 힘으로 구시대의 적폐를 조금이나마 빨리 끝내고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대의제 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라는 세 개의 민주주의가 서로 조화롭게 소통하고 공생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시대를 만들어야 할 사명이 있다. 내년의 지방선거, 공약사항인 임기 내 개헌, 2020년의 총선이 모두 그 계기가 되어야 하고, 특히 시민들이 대의제 민주주의를 다시 신뢰할 수 있고 인물이 아닌 정당과 정책을 보고 투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촛불을 혁명이라고 당당히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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