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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에 보고 듣고 읽은 것 중에서 기억에 남는 몇 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치국은 나라를 다스린다고만 굳건히 알았는데 나라를 치유한다고 새길 수도 있다(배병삼의 <맹자, 마음의 정치학>). 노자에서 지극히 좋은 것은 마치 물과 같다는 뜻의 ‘상선,약수’를 ‘상,선약수’로 끊어 읽으면 상투적인 말의 울타리를 벗어나 이런 뜻밖의 뜻을 얻을 수도 있다. 윗대가리가 물처럼 잘해야 한다. 덕불고필유린. 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풀이가 아주 강고하다. 이 또한 조금 비틀어보면, 덕은 혼자가 아니고 반드시 더불어 함께하는 덕목이 있다(<이탁오의 논어평>). 마치 불행이 혼자가 아니라 단체로 오는 것처럼.

경자년이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다. 올해는 또 무슨 생각이 찾아올까. 강가에 한해살이풀처럼 서서 흘러가는 것을 거저 바라보기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문득 번개 같은 꾀가 떠올랐다. 한해를 연초에 열고 연말에 닫는 학교로 삼기로 했다.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길이 좀 분명해지는 듯했다. 간지를 따라서 교명은 경자학교로 명명했다. 올해 크게 할 일도 역시 산을 찾는 것. 가서 나무와 그 너머를 자꾸 짚어보는 일에 매달리기로 했다. 교가도 정했다. 백마야 울지마라. 언젠가 어머니와 함께 빼놓지 않고 본 <가요무대>에서 송해 선생이 참 찰지게 부른 노래다. 곡조는 물론 가사가 올해의 나이와 지금의 심사를 잘 대변해주었다. 

“백마는 가자 울고 날은 저문데/ 거치른 타관 길에 주막은 멀다/ 옥수수 익어가는 가을 벌판에/ 또다시 고향 생각 엉키는구나/ 백마야 백마야 울지를 마라.” 올해의 주제가를 흥얼거리며 인왕산에 오른다. 내가 나무를 찾아 산으로 드나든 건 인왕산이 시초였다. 말하자면 여기는 내 나무 문명의 발상지다. 인왕산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정작 인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찔러왔었다. 산의 나무들이 무어라 말을 하는 것 같은데 귀를 닫고 있다는 낭패감이었다. 저 산꼭대기의 나무들을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인왕산 넘어 첩첩산중으로, 나무들 너머의 곡절을 찾아서 경자학교의 대문을 성큼 출발한다.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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