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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의 한철 출몰처럼 사이클이 매우 짧은 영화판에서 점점 더할 나위가 없는 새로운 경지를 밟아가는 <기생충>이 개봉하기 전 공개한 시놉시스를 보면서 카프카의 <변신>이 떠올랐었다. 봉준호의 영화는 가족을 다루기는 했으되 카프카의 소설과는 전혀 결이 달랐다. 가족과 기생충을 연결했던 내 어설픈 짐작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른바 사회적 계급을 건드린 영화는 가족들끼리의 소외가 아니라 가족과 가족 간의 싸움이었다.

최근 몇 주간 집 안에 스스로 발목을 가뒀다. 오래 묵혀둔 숙제를 거창한 핑계로 삼았다. 산에 못 가니 자꾸 화면 속으로 빠져든다. 좀 모르고 살아도 되는데 어쩌자고 나의 손바닥은 이리도 복잡한가. 그 좁은 면적 안으로 세상만사가 집결하고 그것은 이내 마음속 여러 갈피를 끄집어내기도 한다. 근거 없는 불안과 지나친 걱정이 흥건해지는 것이다.

즐비한 나무 대신 이런저런 뉴스는 결이 아주 다른 생각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바탕에는 결국 가족이 있다. 우한의 교포가 입국하기까지의 국내의 싸늘한 반응과 그 이후의 훈훈한 대응이 요동친다. 가족만 먼저 보내고 돌아서는 우한 영사의 눈물의 편지가 있는가 하면 한 교민의 이런 인터뷰도 있다. “남기로 했습니다. 여기 가족이 있고, 중국인 아내가 있습니다. 여러 곳에서 귀국 여부를 물어 왔지만, 귀국을 결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양력은 물론 음력으로 이제는 완전히 경자년에 들었다. 새 달력도 벌써 한 장만큼 얇아졌다. 입춘이구나, 새삼 중얼거리면서 복잡한 심사도 달랠 겸 창가의 화분 하나를 본다. 작년 고향에 벌초 갔을 때, 내가 뛰놀던 논두렁의 흙을 한 삽 퍼서 담아둔 화분이다. 그냥 무심코 지나친 곳에 의외의 식물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특히 흔하디흔한 방동사니의 매력에 빠져 퍼온 것이다. 내 알량한 호기심을 다독이며 그저 물만 주었을 뿐인데 논두렁 화분의 흙은 지금 들끓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손톱만 한 풀들이 꿈틀꿈틀 올라오고 있다. 세상이 어수선할수록 흙에 발을 묻고 사는 것들에 마음을 포개면서 카프카의 <변신>을 다시 펼친다.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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