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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빙하가 해마다 줄어든다고 한다. 터전을 잃고 몸이 홀쭉해진 북극곰 사진을  보았다. 먹이를 찾아 홀로 방황하는 흰곰. 점점 줄어드는 빙하의 면적이 곰의 발목을 점점 올가미처럼 죄는 것 같았다. 기후변화로 인한 그 처지를 한반도에도 적용시켜 본다. 겨울에도 적설량, 눈 오는 일수가 적어진다. 무엇보다도 눈 쌓인 면적이 졸아든다. 강원도로 가서야 겨우 제대로 된 눈을 만나볼 수 있다. 이러다간 나의 겨울 정신도 북극곰의 육체처럼 핼쑥해지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을까.

퍽이나 다행스럽게 최근 눈 소식이 들렸다. 심설산행을 도모하러 백두대간의 마산봉-대간령 구간을 걸었다. 진부령 입구 흘리에서 스패치, 아이젠을 착용하는데 모처럼 쓸모를 만난 장비들이 덩달아 흥분하는 것 같았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행을 천왕봉에서 출발했더라면 여기는 마지막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구간이다. 마산봉 조금 지나 병풍바위에 이르니 눈앞이 장관이다. 멀리 아득한 곳에 원시의 바깥으로 넘어가는 입구처럼 향로봉이 아스랗다. 겨울을 앓는 산하가 붕대라도 감은 듯 전모가 훤히 드러난다. 시린 눈을 달래며 시선을 돌리면 털진달래 옆에 따뜻한 안내판이 있다. “(…) 봄이면 주위로 각양각색의 야생화가 피어나고 여름이면 산의 푸름과 상쾌함을 느낄 수 있고 병풍바위와 산의 아름다운 조화를 느낄 수 있다. 가을에는 형형색색의 단풍과 운해가 산에 끼면 마치 산 전체가 단풍으로 물들어 훨훨 타다가 연기를 뿜어 올리는 듯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인적 드문 한겨울 산중에서 문자로나마 봄, 여름, 가을을 만나 얼었던 마음의 한 조각을 데웠다. 털진달래는 주로 고산지대에 살고 잎에 털이 많다. 꽃보다 먼저 잎을 틔울 준비를 하며 묵묵히 겨울을 견디는 털진달래. 바위틈에 야물게 어울린 털진달래 위로 눈이 내린다. 눈은 공중을 꼬집으며 내려와 차렷! 자세로 선다. 하늘이 평소 무어라 말은 안 하지만 이렇게 가끔 부드러운 말씀도 내려주는 것. 털진달래 위로 쌓이는 무언의 흰 말씀을 오래오래 경청했다. 털진달래, 진달래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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