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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개성에서 왕평이 노랫말을 쓰고 전수린이 곡을 붙인 대중가요 ‘황성(荒城)의 적(跡)’이 만들어졌다. 고요함, 폐허, 회포, 허무, 외롭다 등 식민지 주민의 비애(悲哀)를 표현하는 단어들로 채워진 이 노래는 그해 가을 단성사에서 이애리수가 부른 뒤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가 공전의 히트를 쳤다.

애초 노랫말을 검열하면서 ‘문제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통과시켰던 일제 당국은 부랴부랴 이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하고 작사·작곡자를 잡아들여 닦달했다. 그들은 이 노래의 ‘황성’이 일본어 ‘아라키’로 발음되는 황성(荒城, 황폐한 성)이 아니라, 대한제국 시대의 서울을 의미하는 ‘황성(皇城)’일 거라고 의심했다. 이때로부터 20년 전만 해도, 서울의 공식 명칭은 ‘대한 황성’이었다. ‘황성은 서울이 아니라 개성’이라는 작사자의 해명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 사건을 겪은 뒤, 황성옛터와 비슷한 노래는 물론 그에 훨씬 못 미치는 노래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식민지 원주민들은 슬픔을 함부로 표현하는 것도 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아예 슬픔이라는 감정을 억누르고 사는 것이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는 길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검열과 그에 후속한 처벌이 반복되면서, 검열당하는 자들은 검열하는 자의 시선으로 자기 내면을 살피고, 검열하는 자가 문제 삼지 않을 범위 안으로 자기 생각과 말의 한계를 좁히는 습관을 들여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검열하는 자의 시선을 의식하며 산다고 해도, 그가 무엇을 문제 삼을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이런 조건에서는 ‘문제 되는’ 생각과 말뿐 아니라 ‘문제될 염려가 있는’ 생각과 말도 금기의 영역에 갇히게 마련이다. 설사 검열자가 그어 놓은 ‘금기의 경계선’이 명료하다 해도, 그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어쨌든 위험하다. 위험한 경계선에서는 멀리 떨어질수록 안전한 법이다. 이렇게 해서 공개적이거나 반공개적인, 때로는 극히 사적인 대화와 교류마저도, 검열하는 자가 그어놓은 경계선 한참 바깥의 공간에서만 이루어지게 된다. 검열이 진행되는 영역뿐 아니라, 검열이 진행될지도 모른다고 의심받는 영역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심리적 공간’을 자진해서 축소시킨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 감시의 눈이 존재한다는 일반적 믿음 아래에서는, 허용된 범위 안에서만 생각하고 시키는 대로만 말하는 기계적 인간, 노예적 인간이 대량생산될 수밖에 없다.

서적 <검열에 대한 검은 책> (출처 : 경향DB)


대통령이 “대통령 모독이 도를 넘었다”고 발언한 직후, 검찰은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전담 수사팀’이라는 것을 만들어 인터넷 포털과 SNS를 실시간 감시하고 ‘문제가 되는 글’은 즉시 삭제하며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람뿐 아니라 퍼 나른 사람도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조치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검찰 고위 관계자는 “표현의 자유가 왜 위축되느냐? 문제되지 않는 글만 쓰면 아무 문제 없다”고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학교 일진이나 폭력배가 “까불면 죽는다”고 한 뒤 “뭘 그리 겁내냐. 까불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없다”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허위사실인지 아닌지, 문제가 되는 글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권한을 권력 기관이 독점한 상태에서, 이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것일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금기의 영역을 넓히고 생각할 공간을 줄이라고 협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사태 직후 이른바 ‘사이버 망명’이 줄을 이었고 수사기관의 무절제한 사생활 침해를 비판하는 여론도 높아졌지만, ‘국론분열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도 많다. 대통령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의 사생활을 침해하겠다는 권력기관의 발상도 문제지만, 검열과 자기 검열을 당연시하는 문화야말로 후손에게 물려줘서는 안되는 식민지 노예 문화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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