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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에는 항상 책임이 따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상위 1%를 차지하고 있는 재벌 자본가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관계에서 책임은 지지 않고 오직 권리만 행사한다. 예를 들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차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면? 이 노동자들 모두 현대차를 조립하고 있는데도 하청업체 소속이니 “저들은 우리와 상관없는 사람”이라며 거부한다. 아무런 책임을 안 진다는 거다. 그런데 만일 이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자기들과는 상관없다더니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탄압하는 데에 현대차가 직접 나선다. 노사관계 당사자로서 책임은 지지 않고 사용자로서의 권리는 다 누리는 것이다.

지난 23일,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현대차에 무려 70억원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4년 전 파업으로 7건의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며, 이들 소송 모두 하청업체가 아니라 현대차가 직접 제기한 것이다. 이번이 6번째 판결이며 누적 배상액은 185억원에 달한다. 185억원. 현대차에 저 돈은 한전 부지 매입에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질러댄 10조5500억원의 한 달 이자보다 작은 금액이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저 돈은 자자손손 대를 이어도 갚기 어려운 금액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 판결이 나오기 일주일 전에 현대차가 애초 소송을 제기한 323명의 조합원 중 67명에 대해 소를 취하해준 것이다. 그 67명은 누구일까? 조합원들이 집단으로 현대차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취하하고 사측이 제시한 신규채용 절차를 거쳐 정규직이 된 노동자들이다. 간단히 말해 비정규직노조의 지침을 따르지 않은 이들에게 소를 취하한 거다. 현대차의 목적이 손해배상이 아니라 비정규직노조 파괴에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노조의 파업에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것만으로도 세계적인 노동탄압국의 오명을 사고 있는데, 소송 취하를 미끼로 노조 탈퇴나 투쟁 포기를 종용하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쌍용차 노동자들 역시 투쟁을 포기하고 희망퇴직을 한 이들에게는 사측이 손해배상 소송 대상에서 제외했다. 반대로 파업 진압비용을 물어내라며 경찰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는 희망퇴직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자본가들의 손해배상 소송 목적이 노조 파괴와 투쟁 포기 종용에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 아닌가.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이지만 검찰과 노동부는 이를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있다. 하긴, 이미 4년 전에 대법원이 불법파견임을 판결했건만, 현대차를 파견법 위반으로 기소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검찰 아니던가. 노조탄압과 불법파견을 자유롭게 하라고 자본가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있다. 노조 지침을 어기고 투쟁이 아니라 채용절차에 응하면 소를 취하해 대상자가 줄어들게 되니, 반대로 탄압을 버티고 있는 조합원들의 경우 물어야 할 배상액이 더 커진다. 당연히 노조 탈퇴나 투쟁을 포기하라는 무언의 압박이 된다. 이게 노조 파괴수단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다만 이번 사건에서 재판부는 “(현대차가) 문제 해결을 위해 피고 노조와 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단체교섭을 거부하는 태도로 일관하여 조합원들과의 갈등이 심화된 점”을 감안해 조합원들의 책임을 현대차가 입은 손해의 70%로 제한한다고 판결했다. 하청업체 뒤에 숨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진짜 사장’ 현대차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에 이어 삼성전자서비스에서, 그리고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노조를 결성해 투쟁을 시작했다. 책임은 지지 않고 사용자로서 권리만 누리고 있는 재벌들이여, 손해배상 따위로 노조 파괴 획책 그만하고 이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에 직접 책임을 져라.


오민규 |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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