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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따뜻한 햇볕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우리말 속담 가운데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쬔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궁하거나 다급해도 체면 깎는 짓은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친다’는 속담과 한뜻이다. 그까짓 체면이 뭐길래, 양반은 체면에 목숨까지 거는 걸까?

‘겻불’은 곁에서 얻어 쬐는 불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겨를 태우는 불’이다. ‘겨’는 벼, 보리, 조 따위의 곡식을 찧어 벗겨 낸 껍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겨를 태운 불은 뭉근하게 타오르기 때문에 불기운이 약하다. 해서 ‘겻불’에 ‘불기운이 미미하다’란 의미도 있다.

속담 중의 ‘겻불’을 ‘짚불’로 쓰기도 한다. ‘짚불’은 짚을 태운 불을 말한다. ‘겨’나 ‘짚’은 태우면 연기만 많이 날 뿐 불기운은 신통치 않다. ‘겻불’과 ‘짚불’은 불기운이 시원찮기로는 도긴개긴,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한데 ‘겻불’을 ‘곁불’로 잘못 쓰는 경우가 흔하다. ‘곁불’은 얻어 쬐는 불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까이하여 보는 덕을 말한다. 운 나쁘게 목표물 근처에 있다가 맞는 총알을 일컫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어떤 일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가 받는 재앙을 가리킨다. 따라서 신통치 않거나 시원치 않음을 뜻하는 ‘겻불’과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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