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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책 | 변호사·자유경제원장
임기 말이 되자 대통령의 측근들이 줄지어 감옥에 간다. 그 중엔 실세도 있고 캠프에 가서 충성을 바친 덕분에 한 자리 꿰찬 분도 있다. 그리고 정해진 수순처럼 대통령의 형이 감옥에 갔다. 그는 전(前) 정권의 봉하대군에 빗대어 영일대군으로 불렸고 대통령도 어려워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래서 취임 전부터 만사형통이라고 수군대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그런데도 대통령만 몰랐다는 말인가. 아니면 형의 결백을 믿었던 것일까? 누가 권불오년(權不五年)이라는 우스개를 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세도가들이 줄줄이 망신당하는 걸 두고 이런 허망한 우스개로 아직은 이 땅에 정의와 법치가 살아 펄떡인다고 자위해야 하나.
야당은 신을 냈다. 그러나 권부의 부패를 도마에 올려 요리하기도 전에 원내대표가 검찰에 가야 했다. 부패혐의로 감옥에 갔다 온 분이다. 그는 고향의 역전에서 할복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여당이 방탄국회는 꿈도 꾸지 말라고 겁박하고 이 일이 짐이 된 야당 대선주자들의 고민이 깊어갈 즈음 이번엔 여당의 비례대표 의원이 공천심사위원에게 돈을 바친 걸 배달부가 일러바치는 통에 다시 여당 집안에 큰불이 붙었다. 그 여당은 말이 여당이지 현 권부와 거리를 둔 지 오래된, 말하자면 한 지붕 다른 가족이다. 이 바람에 야당 원내대표는 세간의 주목에서 벗어나 최대수혜자가 되었고, 부패한 권부와 선을 그으며 도덕성과 원칙을 내세우던 여당 주자만 머쓱하게 돼버렸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머리를 숙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전국구는 전국구(錢國區)’라는 오명은 그 뿌리가 깊은 말이다. 아니 진리였다. 18대만 하더라도 친박연대라는, 급조정당이 전국구 헌금으로 된서리를 맞았다. 그때도 어느 당 누구는 얼마 내고 의원이 됐다, 누구는 외상으로 들어와서 오리발을 내밀었다 하는 말들이 여의도 정치판에 공공연히 떠돌았으니 감옥 갔거나 금배지를 떼인 사람만 억울하고 원통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니까 재수 없거나 힘없는 놈만 감방에 간다는 세간의 자조 어린 말들이 정치판에도 그대로 통용되는 것이다.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는 말도 오래됐다. 이런 말이 떠도는 건, 누구 할 것 없이 정치인은 털면 다 털린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정치판과 부패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왜 정치판은 부패하는가? 옛날에는 막대하게 드는 정치자금 핑계라도 댔다. 그러나 선거공영제를 운용하고 세금으로 몇 백억 원을 정당에다 질러주는 세상에 굳이 돈을 받고 의원직을 팔아먹는 건 무슨 까닭인가? 현 정권의 실세는 뇌물을 경선자금으로 썼다고 법정에서 당당히 말했다. 그 바람에 그의 수뢰는 대선자금 수사로 비화될 판이다. 결국 보스를 둘러싼 외곽 사조직에 돈을 썼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지금 대선주자들의 조직들은 전부 맨입에 움직이는 깨끗한 조직인가? 그렇지 않다면 그런 조직을 방치하는 건 부패를 방조(傍助)하는 게 된다. 하긴 별다른 수입원도 없던 보스들이 퇴임 후 엄청난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걸 보면 누가 누구를 나무랄 수 있을 것인가?
문민정부 4기가 지나는 동안 부패와의 연결고리를 끊지 못한 건 우리 정치판이 썩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다. 악취의 원천은 우리 정당들이다. 정당이란 이념으로 모여 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결사체인데 어디 우리 정당들이 이념으로 뭉친 적이 있던가. 백년 간다던 열린우리당은 권력이 다하기 전에 산산히 부서졌다. 보수정당이라던 한나라당은 이름과 색깔과 이념을 통째 바꿨다. 명색이 복수정당제를 내건 이 나라에 십년 된 정당조차 없다. 이념으로 선 정당이 아니니 대선 캠프에는 신념 없는 꾼들이 들끓는다. 과거 MB 캠프에 모여들었던 몇 천 명의 교수 법조인 언론인들은 지금 다시 새 보스를 찾아 충성을 맹세하는 중이다. 장이 선 것이다.
권력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벌어지는 이합집산이 바로 악취의 근원인 것이다. 이념으로 뭉치지 않고 탐욕으로 뭉쳤으니 결국은 썩을 수밖에 없다는 건 만고의 진리다. 썩어도 저들만 썩으면 좋겠는데 그 악취는 언제나 대중의 속을 뒤집고 토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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