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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준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

연말 대통령선거의 대진표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여야 정당후보들은 이미 모두 출사표를 던지고, 목하 당내 경선 중에 있다. 안철수 원장 역시 얼마 전 사실상의 대선 공약집 성격의 대담집을 출간, 실질적으로 대권 참여선언을 했다. 일부 이변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판세로 보아 일단은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3인 대립구도로 압축되는 듯하다. 따라서 먼저 이들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제시된 비전을 간략하게나마 비교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정치적 비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특정 정치인의 단순한 이념이나 정책적 지향점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첫째로 그것은 정치인의 총체적 삶의 역정 속에서 체화된 가치관, 철학을 의미한다. 대부분 유권자들은 후보의 정책을 일일이 따지기보다는 바로 이러한 정치인의 비전을 기준 삼아 공직후보를 선택하는 것이다. 둘째로 그것은 시대정신을 토대로 하는 문제설정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여기서 시대정신이란 어떤 특정한 교조적인 주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당대 가장 긴박한 현안을 풀려는 문제의식과 고민이 담겨 있는 열린 성격의 것이다. 문제설정이란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제기와는 다르다. 그것은 고도의 실천의지와 책임윤리를 바탕으로,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국정의 핵심과제와 그 접근방법을 선택하는 행위인 것이다.


박근혜 후보(출처 :경향DB)


박근혜 후보는 국민의 꿈 우선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여기서 국민의 꿈이란 가난을 이기는 것에서 시작해 오늘의 경제위기 극복에 이르기까지 주로 민생문제와 관련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재 박 후보의 경제 민주화와 연관이 있지만, 멀리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잘 살아보세의 비전에도 닿아 있다는 점에서 개인을 넘어 박정희 가계의 정치적 비전이라는 특성을 강하게 띠고 있다고 하겠다. 박 후보가 품위를 토대로 원칙과 신뢰를 중시한다는, 우리 정치권에서는 흔치 않은 장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2대에 걸친 공적 헌신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비전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보다는 ‘국민을 위한’ 즉 위민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여전히 박정희 틀에 갇혀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더구나 국민에게 꿈을 심어주고 그 실현을 도와주는, 그리고 ‘고독한 결단’을 중시하는 리더십은 수평적이어야 할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나 의사소통 방식과는 거리가 먼, 수직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위계질서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열린 소통과 수평적 관계를 박 후보 리더십의 특징으로 꼽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민생문제를 중시하는 위민적 성격의 비전이 이러한 리더십과 만났을 때 오히려 민의와 동떨어진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지적하고 싶다. 공론과 설득의 과정을 배제하고 생략한 채 시대착오적으로 폭주한 리더십의 폐해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문재인 후보 (출처 : 경향DB)


한편, 문재인 후보는 자신의 정치적 비전으로 분배와 직접참여를 전면에 표방했다. 최근에는 노무현 정부를 ‘성공한 정부’로 정의한 바도 있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일관해온 자기 삶의 역정과 깊이 연관된다는 점에서 이해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독자적인 목소리가 없다는 점에서 노무현 패러다임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문 후보는 국가 비전도 국민의 마음속에 있으며, 겸손하게 이를 받들면 길이 보일 것이라고 하면서 국민들에게 함께 비전을 쓰자고 제의한 바 있다. 정치인으로서 민심에 귀 기울이려는 훌륭한 소통 자세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문제제기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문제설정을 위해서는 충분치 않다. 그래서인지 그가 제시한 민주적이고 공정한 경제 모델과 직접참여정치 모델은 아직 현실적 의미가 분명치 않고 실현되기에는 적지 않은 전제조건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그의 비전에서는 참여정부 핵심 실세들의 설익은 급진성도 감지되어, 일종의 ‘섭정정치’로 흐르지 않을까 우려된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급진성이 진정 진보적이었는지 회의적인 국민들이 적지 않은데, 문 후보의 비전에서 기시감(데자뷰)이 느껴진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SBS 토크쇼 '힐링캠프' 출연한 안철수 원장 (출처: 경향DB)


마지막으로, 안철수 원장은 자신의 정치적 비전으로 미래와 변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아무래도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기성 정치권을 구체제로 단정하면서 특히 현 집권세력을 반대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공적 경험 부족 논란에 대해, “나쁜 경험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장점”이라고 항변하면서, 젊은층 사이에서는 이미 시대적 아이콘이 되어 있는 IT전문가 그리고 나눔의 실천자로서 자신의 ‘성공적이고 명예스러운 삶’의 역정을, 기존 정치권 전체 혹은 현 집권세력을 거부하는 그의 비전과 효과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그러나 안 원장 본인이 그리는 미래와 변화, 특히 복지, 정의, 평화가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우리 정치부터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이나 성찰의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사실, 오랜 기간 지역적 기반을 근거로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해 오며 무능과 부패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거대정당들의 독과점 구도를 깨고, 낡고 협애한 정치 지형을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일은 안 원장 개인이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해서 저절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 일각에서 안 원장에게 쏟아지는 ‘메시아적 기대감’이 적잖이 우려되는 것이다. 또한, 그의 언행에서 드러나는 선악대결구도적 발상이나 세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메시아적 소명감’이 평소 정치를 행정과 구분하여 배격하는 반정치적 성향, 그리고 생산성·효율성을 앞세우는 ‘CEO 정치’와 결합했을 때 과연 어떤 미래와 변화가 초래될지 걱정된다.


앞서 살펴본 대로, 유력후보들은 각자 포착한 시대정신을 토대로 야심만만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사가 모두 그렇듯이 정치적 비전 역시 빛과 더불어 그림자의 양면을 내포하고 있다. ‘국민의 꿈’을 우선시하는 박 후보에게서는 권위주의 시대의 ‘궁정정치’, ‘분배와 참여’를 앞세우는 문 후보에게서는 국정을 개혁의 실험장화했던 친노 세력의 ‘섭정정치’, 앙시앵 레짐을 타파하고 복지, 정의, 평화를 표방하는 안 원장에게서는 메시아적 ‘신정정치’라는 음영이 강하게 감지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하는 질문은 이들 중(혹은 기타 대선 후보들 중에서) 누가 12월에 대권을 잡을 것인가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한국 정치를 혁신하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며, 그에 수반되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우리 정치의 근본적인 변화가 선행되어야 비로소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비리와 부조리 및 불균형 문제들을 천착하고 민생문제에 본격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중 누가 대권을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도 어디까지나 이러한 맥락에서 따져야 할 것이다.


앞서 나온 ‘꿈’이라는 단어를 놓고 얘기해보자. 오늘 이 땅의 시민들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러한 꿈이 우리가 국가공동체로서 지금까지 걸어온 여정의 궤적이나 정보화·세계화에 따르는 문명사적 대전환기라는 세계사적 맥락에서 어떻게 실현되어야 할지, 특히 급격하게 돌아가는 동북아 정세와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긴박한 상황에 맞닥뜨린 지금 어떻게 이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할지 등등에 대해서 얼마나 심도있는 고민을 하고 있는지 이들 후보에게 묻고 싶다. 나아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폭발하듯 분출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변화와 참여에 대한 욕구를 어떻게 수렴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각기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묻고 싶다. 


분명한 것은, 위민적 비전과 폐쇄된 리더십이 결합한 ‘궁정정치’의 연장, 국민들에 의해 무능하고 부패한 것으로 평가받은 세력의 ‘섭정정치’, 풍부한 경험이나 철저한 준비없이 메시아적 소명감에 의존하는 ‘신정정치’로는 21세기 대한민국 국민들의 꿈을 실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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