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하승수 | 변호사
나는 지난 주말에 불법을 저지르고 왔다. 나를 고발하라.
내가 저지른 불법은 밭에 감자를 심은 것이다. 땅콩도 심고, 호박도 심었다. 평화로운 강가의 밭에서 따스한 햇볕을 쬐며 일을 했다. 내 마음도 평화로웠고, 주위의 사람들도 평화로웠다. 자연은 편안하게 우리를 감싸주었다. 그러나 이런 행위가 불법이란다. 팔당 두물머리 이야기다.
현 정부는 4대강을 살린다면서 4대강을 파괴해 왔다. 거센 반대운동에도 불구하고 4대강 공사는 거의 마무리되었다.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저항하며 남아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팔당 두물머리이다. 정부는 수도권의 대표적인 유기농업 단지였던 이 지역에 자전거도로를 낸다는 어처구니없는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유기농업을 하던 두물머리 농민들이 이에 저항해 왔다. 단식도 하고 소송도 하고 집회도 했다. 시민사회단체뿐만 아니라 종교계까지 반대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정부와 경기도, 양평군은 아랑곳없이 밀어붙였다.
지금은 떠날 사람들은 떠나고 4가구가 남았다. 그런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남아있는 농민들을 몰아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경작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고, 농사를 짓는 것에 대해 형사고발을 하고 있다.
경기 양평군 팔당 두물머리 농민들이 수확한 감자를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I 출처:경향DB
농사를 지어오던 땅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불법이 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봄은 왔는데 씨앗을 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런 상황에서 선택한 방법이 ‘불법경작 운동’이다. 일종의 시민불복종 운동인 셈이다.
지금은 시민불복종 운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사실 이번 총선에 많은 기대가 있었다.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바로잡고 두물머리 농지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국회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다수당을 차지했고, 두물머리 공사를 국회를 통해 중단시키기는 어렵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인류 역사를 보면, 잘못된 법과 정책에 대해 시민의 상식으로 맞서는 마지막 수단은 시민불복종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간디가 했던 소금행진이다. 1930년 영국은 식민지였던 인도에서의 소금생산을 통제하고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여기에 저항하기 위해 간디는 24일을 걸어 바닷가로 갔다. 간디의 이 행동에는 초기에 70명 정도가 동참했지만,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났다. 바닷가에 도착한 간디는 주전자에 바닷물을 넣고 끓여 소금을 만들었다. 이것이 간디가 한 유일한 행동이었지만, 간디는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그러나 간디의 이 행동에는 수천명이 참여했고, 영국정부의 부당한 정책은 세계에 알려졌다. 대표적인 시민불복종의 사례이다.
물론 당시의 인도 상황과 지금의 우리 상황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권력이 부당하게 사람들의 삶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보면, 본질은 똑같다. 인도의 바닷물을 사용해서 인도사람들이 소금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것과 성실하게 유기농업을 가꿔 온 농민들에게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하는 것이 뭐가 다른가?
그래서 두물머리 농민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두물머리 밭전(田)위원회’를 만들어서 불법경작 운동을 시작했다. 농사를 짓는 것이 죄라면 나부터 고발하라는 운동이다. 고발하기 좋게 증거도 남겨 놓고 있다. 불법경작에 참여한 기념으로 컨테이너에 이름을 써 놓고 있는 것이다. 고발하고 기소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모르고 한 일은 아니다. 나는 명백하게 불법인 것을 알고 했다. 고의는 확실하다.
그러나 나는 두물머리에서 농사짓는 것을 불법으로 몰아붙인 권력에 굴종할 생각은 없다. 4대강 사업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 두물머리 농민들을 쫓아내는 장면을 두고 볼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권력에 불복종한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불복종에 참여하기를 권한다. 힘없는 농민들이 농사짓는 것을 처벌하는 게 법이라면, 간디의 말처럼 “우리는 이 법의 준수를 정중하게 거부할 것이라고 엄숙하게 선언한다”.
'주제별 > 환경과 에너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영재의 천관산 편지]아낙네의 힘 (0) | 2012.04.22 |
---|---|
[더글러스 러미스 칼럼]원자력은 절대 부패한다 (0) | 2012.04.18 |
[경향마당]농식품 인력 교육, 새로운 시스템을 (0) | 2012.04.16 |
[녹색세상]아리수를 마시지 않는 이유 (0) | 2012.04.11 |
[녹색세상]붕대 감고 하는 악수 (0) | 2012.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