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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러미스 정치학자·오키나와 거주/ 번역 | 손제민 기자
1970년대 초반 일본 학생들의 미국 워싱턴주 핸포드 핵시설 견학을 주선한 바 있다. 견학 시점을 나가사키 원폭투하 기념일(8월9일)에 맞췄다. 이 때문에 견학 안내자는 당혹스러워했다. 자신들이 만든 플루토늄으로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기뻐하는 핸포드 핵시설 노동자들 사진 앞에 섰을 때 안내자의 목소리는 중얼거리듯 작아져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핸포드 핵시설이 얼마나 안전한지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는 매우 활기를 띠었다. 그는 플루토늄 폐기물은 깊은 구덩이에 매립되며 누출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모니터된다고 말했다. 내가 질문했다. “플루토늄의 반감기가 2만4000년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누가 그렇게 오랫동안 모니터하게 되지요?” “미국 정부가 하지요.” “인류 역사를 통틀어 2만4000년이나 지속된 정부가 있나요?” 그는 대답하지 않고 경멸하듯 나를 쳐다봤다. 내가 애국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매우 똑똑하고 고도로 훈련된 기술자라도 바보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월성원전 앞바다에서 신규 원전 건설 반대 등을 주장하며 해상시위를 벌이고 있다. I 출처:경향DB
나의 전공인 정치학에서 나온 유일한 과학적 법칙이 있다면 바로 ‘권력은 부패한다’는 것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하지만 절대 권력에 가장 가까운 힘이 원자력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정치학자들은 거의 없다. 원자력은 특유의 방식으로 그것을 맹신하는 사람들의 사고를 타락시킨다. 사람들은 원자력이 상식적 판단이 적용되지 않는 아주 높은 곳에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죽음의 방사능을 계속해서 내는 물질을 생산하는 것은 어리석다든지, 그럼으로써 수만년동안 그것을 모니터해야 한다든지 하는 상식적 판단들 말이다.
상식을 가진 나의 할머니는 “사고란 일어나기 마련”이라고 말하곤 했다. ‘사고’는 예기치 못한, 계획하지 않은 그 무언가를 의미한다. 위험한 활동들을 할 때 우리는 위험을 수용한다. 우리는 자동차 사고나 비행기 추락 확률이 매우 낮게 유지되는 한 그리 걱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원자로는 확률이 ‘낮다’는 말로 충분하지 않다. 원자로의 완전 용융이 가져올 결과는 너무도 끔찍해 원자로 건설을 정당화하려면 사고가 전혀 없을 거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 문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점 뿐만 아니라 핵기술자와 핵무기 추진론자들을 머릿속 그리고 표와 그래프에만 존재하는 ‘환상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점이다. 너무도 상식적이어서 진부하게 들리는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말이 적용되지 않는 세계 말이다.
하지만 사고는 일어난다. 후쿠시마 원전을 관리했던 기술자들은 쓰나미가 덮쳐 원자로를 삼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맞다. 그게 바로 ‘사고’의 정확한 의미이다. 상상력을 넘어서는 일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비상 펌프에 연료를 넣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누군가 ‘사고로’ 발전소와 본사 사이의 전화선을 끊으리라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바닷물이라도 끌어와 그 섬세한 기계에 물을 뿜어 적시기 시작했을 때 - 이 조치는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것 같다 - 바닷물의 소금기가 그 모든 계기판과 밸브, 펌프, 스위치 등에 끼칠 영향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투여한 바닷물이 다시 밖으로 흘러나오며 방사능까지 동반해서 나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원전 노동자들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은 인간일 뿐이다. 실수를 범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고장나지 않는 기계도 없다. 간단히 말해 사고 없는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수십년간 이 얘기를 해왔다. 이제는 사람들이 이런 얘기에 지겨워할 정도가 됐다. 지겹든 그렇지 않든 그게 진실이다.
사람들은 “그러면 원자력에 대한 당신의 대안은 뭐냐”고 묻는다. 사실 나는 답을 알고 있다. 핵발전의 대안은 탈핵이다. 시한폭탄이 깔린 안락한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려보자. 당신은 “당장 그 의자에서 벗어나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그 사람이 “그러면 대안이 뭐요?”라고 묻는다면? 물론, 대안은 그 의자에 앉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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