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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규 사회부장


정권 말이면 으레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가 바빠진다. 검찰의 권력형 비리 수사는 청와대의 레임덕과 맞물려 우리 사회의 통과의례가 된 지 오래다.

10년 전인 2002년에도 그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둘째아들인 김홍업씨는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3남 홍걸씨도 최규선 게이트에 이름이 오르면서 결국 호송차 신세를 졌다.

검찰은 당시에도 엄청난 청와대의 압력에 시달렸다. 이희호 여사가 아꼈던 김홍걸씨 수사 때는 더했다. 당시 검찰에 전화를 한 사람이 박지원 민주통합당 의원이다. 검찰의 한 간부는 “박지원 비서실장의 불 같은 전화가 걸려오는 날이면 검찰청사가 시끄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버텼다. 결국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둘이나 구속되는 전례없는 일이 생겼다.

올해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명박 정권의 3대 권력형 비리가 결국 검찰의 손에 넘어왔다. 내곡동 사저 의혹과 민간인 불법사찰, BBK 가짜편지 의혹 사건이다.

 

민간인사찰 검찰수사결과 규탄 기자회견 ㅣ 출처:경향DB

그러나 수사 결과를 놓고 보면 10년 전과는 전혀 딴판이다. 검찰은 수사 발표와 함께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내곡동 사저 사건만 봐도 의혹 해소는커녕 의혹만 더 키웠다. 이 사건은 이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가 아버지 대신 땅을 사면서 헐값에 사들여 국고에 손실을 끼쳤다는 게 핵심이다. 검찰 수사로 고발내용은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검찰은 그러나 피고발인 7명을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청와대는 “경호동 부지의 땅값이 오를 것을 감안하면 시형씨가 적게 부담한 게 별 문제가 안된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청와대의 황당한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국고에서 최소 5억원 이상을 시형씨에게 얹어준 꼴이지만 문제없다고 본 것이다. 이후 검찰의 처리행태는 더 가관이다. 검찰은 시형씨에게 면죄부를 주는 게 찜찜해서인지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했다. 시형씨가 얼마나 이득을 봤는지 계산해달라고 공을 떠 넘겼다. 대한민국 최고의 사정기관인 검찰이 땅값 계산을 남에게 맡긴 것이다. 땅값보다 훨씬 복잡한 비상장 주식의 주가 평가도 식은 죽 먹듯 했던 검찰의 평소 모습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민간인 불법사찰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2010년의 1차 수사가 부실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재탕수사에 나섰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청와대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검찰 수사에 대비해 증거를 없애고 돈으로 사건 관련자를 입막음했다는 의혹은 나올 만큼 다 나왔다. 불법사찰의 주체인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윤리지원관실의 부활 근거가 된 ‘VIP 충성’ 문건이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검찰의 재수사 결과도 ‘꼬리 자르기’에 그쳤다. 검찰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 같은 부실수사의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수사결과 발표는 검찰 인사를 한달여 앞두고 나왔다. 검사 인사권은 청와대가 갖고 있다.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의 재가를 받아 인사를 한다.

권재진 법무부 장관은 전임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대통령 비서가 법무행정의 수장으로 온 경우는 전례가 없다. 검찰 수사권에 청와대의 입김이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일찌감치 “검찰 수사는 끝났다”는 얘기가 나왔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TK에 고려대 출신이다. 그는 서울고검장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인사발령이 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한 급 위인 서울고검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령난 것은 전례가 없다. 이 대통령이 검찰 인사 관행도 무시하고 그를 챙겼던 것은 나름 이유가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대검 중수부와 함께 권력형 비리를 주로 다루는 곳이다. 그를 앉혀놔야 마음이 놓일 만큼 믿음직한 사람이다.

이번 사건을 처리한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은 일찌감치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그는 정연주 전 KBS 사장을 기소할 때 서울중앙지검 1차장으로 수사를 직접 지휘했다. 당시 검찰은 억지논리를 앞세워 정 전 사장을 기소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청와대가 정공법으로 정 전 사장 문제를 처리해야지 괜히 검찰이 나섰다가는 망신만 당할 수 있다”면서 반대했다. 정 전 사장은 예상대로 무죄를 받았다. 그러나 부실수사를 한 최 검사장은 이후 승승장구했다. 부실수사가 결국 청와대 작품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정치검찰’ 논란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미네르바, MBC 사건도 마찬가지다. 수사 결과는 청와대 입맛대로 됐는지 모르지만 검찰 조직은 쑥대밭이 됐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사건 처리를 놓고 부글부글 끓는다고 한다. 인사는 만사라고 했다. 그러나 검찰 인사는 ‘만사(萬事)’가 아니라 ‘망사(亡事)’가 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 검찰이 망가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국은 청와대의 내사람 심기가 주된 원인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다. 연말 대통령 선거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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