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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배상책임에 대해 최근 사법부가 내린 판단이 주목할 만하다. 서울고법 민사16부(최상열 부장판사)는 지난달 29일 이른바 ‘문인간첩단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국가는 총 6억96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보상을 받았더라도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대해서는 별도의 배상 청구 권리가 원고에게 있음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동안 사법부가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생활지원금 등을 받으면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보고 청구를 각하하거나 기각한 것과는 사뭇 다른 판단이다.
최근 유신·긴급조치 등 과거사와 관련해 청산 내지 화해를 내세우며 경쟁적으로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여야 정치권은 사법부의 이런 결정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배상과 보상의 개념을 명확히 하지 않은 민주화운동보상법과 다를 바 없는 ‘긴급조치보상법’으로는 화해도 청산도 무망하다는 걸 이번 판결이 알려주기 때문이다. 먼저 “국가의 공권력 행사와 관련하여 ‘배상’은 국가의 위법한 행위에 의해 발생한 손해를 보전해주는 것이고, ‘보상’은 비록 국가의 행위가 위법하지는 않으나 그 과정에서 특별한 희생을 한 국민에게 그 손실을 보전해주는 것”이라는 재판부의 설명부터 다시 새겨듣기를 바란다.
(경향신문DB)
이 점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발의해놓은 긴급조치보상법안은 긴급조치가 위법하지는 않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고 하겠다. 반면 법원은 긴급조치가 위헌, 무효라고 판단하고 관련 사건 재심에서 속속 무죄를 선고하고 있다. 사법부가 불법을 인정해 판결하는 사안에 대해 입법부가 합법을 전제하고 법을 만드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운동보상법의 결함이 낳은 이번 판결과 같은 상황이 긴급조치보상법에서도 똑같이 발생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는 얘기다.
정치권이 진정으로 과거사 청산, 부당한 피해 회복, 미래적 국민통합 등을 위한다면 배상과 보상에 대한 개념부터 명확하게 세우고 입법을 하기 바란다. 배상해야 할 것을 보상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입법 취지에 반하고 피해자에게 이중의 고통을 씌우는 것이다. 피해자들의 말처럼 ‘국민의 세금으로 자신들의 과거 행적을 조금이라도 가리려는 꼼수’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된다. 보상할 것은 보상하고 배상할 것은 배상하는 게 국가의 당연한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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