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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가톨릭 천주교회의 정착 과정은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7세기 실학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가톨릭 서적들을 들여왔다. 이후 이벽, 정약용 등이 고난 속에서 이를 체계화하는 등 외국인 선교사의 전파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생적이면서도 적극적인 내부 움직임에 의해 가톨릭의 뿌리를 내려나갔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서양인 신부인 프랑스 정교회 소속 모망 신부가 삿갓을 쓴 모습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세례를 집전하게 된 것이나, 김대건이 사제 서품을 받아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된 것도 모두 이 같은 자발적인 의지와 추진에 의해 가능했다.

요즘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세계경제 구도도 중국과 미국의 2강 체계로 크게 변해가는 상황에서 우리만의 확고한 자리를 잡지 못하면 어려움은 계속될 수도 있다. 혹자는 재빠른 모방으로 성장해온 우리나라 경제가 더 이상 모방할 대상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과감한 자기 혁신의 DNA가 있어 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가혹한 계급 사회와 신분 세습이 당연시되던 사회에서 모진 박해를 이겨내고 가톨릭 교리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사회혁신에 대한 우리의 강한 열망과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는 그 누구를 모방한 것도, 강요받은 것도 아닌 우리의 독창적인 모델이 자발적으로 수용된 것으로 스스로의 판단과 선택에 의해 정착된 것이다.

천주교 박해의 시작이었던 진산사건의 순교지에 세워진 진산성당 (출처 : 경향DB)


필자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깊이 남아있는 본당 신부님의 모습이 있다. 신자들이 드리는 과일이며 선물은 언제나 소외된 이웃들과 나누셨다. 당신이 가야 할 곳은 늘 그늘진 곳이라며 사회적 약자들을 찾아 나섰고, 본당을 떠나실 때는 처음 오신 그 날처럼 검은색 손가방 하나만을 들고 다음 사목지로 향하셨다.

이처럼 가톨릭 정신은 어쩌면 기본에 충실하자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우리나라를 다녀가셨다. 우리 사회가 우리 안의 혁신 DNA를 찾아 가다듬고, 기본에 충실하게 다시 정진해 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윤송이 | 엔씨소프트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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